<선화봉사 고려도경>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란 책은 송나라 휘종 때의 서긍이란 사람이 고려인종 원년 1123년에 고려 송도에 사신으로 왔다가 보고들은 것을존중화주의 입장 에 서서 고려를 폄하해 기록한 일종의 견문보고서다.

그런데 전 40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보면 기존의 일제 식민지사관의 연장선상인 반도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기절초풍할 내용이 간간이 나온다. 고려를 향해 자신들이 출항하고 있는 지금의 절강성 항주부근 명주도 매잠이 고려 땅이라고 서술하고 있는가 하면 고려 동쪽의 경계가 금나라라 하여 연경(북경)을 포함한 하북성이 고려라 하고 있고(반도사관의 금은 고려의 서북지방) 고려의 왕성인 수도가 소림사로 유명한 하남 성 등봉 현에 있는 숭산에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동서 권 35는 자신을 포함한 고려사신 서긍 일행이 절강성 해안을 지나면서 해도의 정경과 느낌을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배를 탄 자신들이 지나가는 곳에 협계산이 있는데 이 산은 중화와 동이를 구분하는 경계라서 협계산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며 그 앞에 두 개의 봉우리가 있어 쌍계산이라고도 한다 했다.

또 협계산 근처에 다섯 개 섬으로 이루어진 오서(五嶼:큰 섬크기순으로 각기 도(島),서(嶼),섬(섬),초(礁)라 함 )가 있는데 정해현 동북쪽 소주의 큰 바다 가운데 군산과 마도에도 오서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항주만의 소흥현 동북해안가 마산지역 마도에도 오서가 있으나 여기서는 주산(舟山) 군도(群島) 즉 군산지역 섬산무리의 하나를 말한다. 또 절강성 임해시 동남쪽 해안에 있는 백산 가까이 흑산이 있는데 흑산은 옛날 여행중이던 사신의 배가 묵었던 곳으로 관사가 아직 남아 있으며 고려의 죄인들로 죽음을 면한 자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동서 권 33을 보면 고려 땅 군산(郡山)의 정체에 대해서도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사신이 고려 땅 군산에 들어가니 순시선 10 여 척이 있는데 모두 돛대 위에 표시를 밝히는 기를 꽂고 있다. 뱃사공과 순시병졸은 푸른 옷을 입고 호루라기를 불면서 징을 치고 다가오는데 돛대 위의 작은 깃발에는 홍주도순(洪州都巡:홍주를 순시하는 배), 영신도순(永新都巡), 공주순검(公州巡檢), 보령(保寧),회인(懷仁), 안흥(安興), 기천(& #26305;川), 양성(陽城), 경원(慶源)이라는 글씨를 쓰고 펄럭거린다.

여기서 홍주는 강서성 파양호지역과 남창시 주변이며, 영신은 강서성 서남부 영신현(영신강이 길안을 거쳐 파양호를 흘러든다), 공주는 강서성 중앙부 낙안현 지역의 공계로 옛날 공파라 한 지역이며,보령은 사천성 문천현지역,회인은 당송때는 해주라 한 곳으로 산동성 덕평현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강소성 공유현지역으로 흡수된 지역이며, 안흥은 호북성 강릉현 동쪽 30리 지점의 현이며 기천은 강소성 강음현 지역이며,양성은 1)하남성 등봉현 지역 2)강서성 영풍현 지역이며, 경원은 광서성 의산현 지역으로 송대의 광남서로지역이다.

동서 「고려도경」 권 30 편에 고려에 박산로라는 향로가 있는데 박산은 하남성 석산현 동쪽에 있는 박산을 말한다. 동서 권 24를 보면 토산품을 설명하면서 고려의 광주(廣州),양주(楊州),영주(永州) 등 3주에는 소나무가 많고 나주도(羅州道)에도 역시 있으나 3주의 풍부함만 못하다 한 구절이 있다.

그런데 고려도경의 역자 정 용석,김종윤 양씨는 광주를 광동성 불산시 지역으로 지금의 광주 특별시를 포함하는 광동, 광서지역으로, 양주를 양자강 구강시,진강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강서성, 절강성 북부지역과 강소성, 안휘성 남부지역으로, 영주를 영수, 영산이 있는 호남성 남부지역 영릉현 지역으로 각기 비정하고 있다.

또 동서 권 22에 고려는 나라안에 밀이 적어 나라안의 모든 장사꾼들이 경동도(京東道)로부터 밀가루를 사온다고 했는데 경동도를 북송의 서울 변경(개봉) 동쪽인 하남성의 동쪽지역과 산동성 서부지역 및 안휘성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또한 「고려도경」에서 북송 사신인 서긍 스스로 절강성의 전단강 유역을 고려땅이라 고백하고 있듯이 「고려도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성항은 임진강위의 예성강을 말함이 아니라 예성항과 벽란은 같은 지역에 있었으며 벽란 지역은 지금의 절강성 오흥 지역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정,김 양씨의 해설에 의하면 북송사신이 고려를 가기 위해 항해한 해도를 따라가 보면 예성항에 정박하기 전, 급수문을 지났다고 하고 있는데 이 급수문은 지금의 홍콩과 주애 사이의 만 입구 호문(虎門)에 있으며 예성항은 곧 광동성 광주시지역 근처의 만 주변의 한 항구라 비정할 수 있으며 바로 이곳에 오문(마카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선화봉사 고려도경』 움직이는 책 刊 정 용석,김 종윤 역) 이 쪽 계통의 책으로 오재성의 한국 상고사학회 회장 이 중재의 의 일 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