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

오키나와(沖繩) 현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강요했던 집단자결에
관한 정부의 역사왜곡이 주민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기노완(宜野灣) 시에서 열린 역사왜곡 규탄 현민 궐기대회에는
무려 11만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1995년 미군 해병대원의 일본인 소녀 폭행사건에 대한 항의집회
당시의 8만5천여명 보다 많은 것으로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
 

현 의회와 사친회(PTA)연합회 등이 주최한 이날 궐기대회에는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지사와 국회의원 등 당파를 초월한 현내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참가자 규모나 면면으로 볼 때 오키나와 현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이처럼 들끓고 있는 것은 올 3월 문부과학성이
내년부터 사용할 고교교과서의 ‘집단자결’ 관련 기술에서
일본군에 의한 명령ㆍ강제 등의 표현을 “오키나와 전투의 실태를
오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 또는 수정토록 했기 때문이다.
 

집단자결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의 상륙 공격이 임박해오자
죽음을 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주민과 가족들이 서로를 죽였던
비참한 역사로서 희생자가 수천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민들이 동굴 등의 은신처에서
일본군으로부터 받은 수류탄을 터뜨려 자결하거나 서로 목 졸라
살해했는데 생존자들은 일본군의 명령과 강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집단자결에 일본군의 명령과 강요가 있었다고
기술한 5개사, 7종의 교과서에 대해 “최근 일본군의 명령과 강요를 부정,
의문시하는 학설과 서적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을 첨부한 삭제 의견을 내놓았다.
 

오키나와 현은 이에 강력히 반발, 현 의회를 비롯해
41개 시ㆍ군ㆍ읍 의회가 검정 의견의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잇따라 채택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심의회의 전문가들 판단으로
행정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에 관한 교과서 검정은 지난 1982년 ‘일본군에 의한 주민
살해’의 기술이 삭제됐었으나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듬해 검정에서 기술이 부활된 바 있다.
 

이날 궐기대회에서 주최 측은 “집단자결이 일본군의 관여 없이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삭제, 수정은 수많은
체험자의 증언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으로 현 주민의 총의를 모아
국가에 대해 검정의견의 철회와
기술의 복원을 요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주최 측은 내달초 결의문을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군부가
본토 사수를 위해 오키나와를 최후의 방어선으로 책정,
미군과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당시 주민의 4분의 1 가량을
사망토록 한데다 전후 미군 주둔의 부담을 떠맡긴 것 등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6살 때 집단자결 현장에서 수류탄 불발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한 중학교 교사(68)는 이날 대회에서 “이번 교과서 검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체험한 시대가 다시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오키나와는 다시 버림을 받을 것이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