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년후의 한반도를 말하다

이 내용은 현재를 바탕으로 예측한 픽션일뿐 사실과는 관계가 없음을 밝혀둔다

2008년 북, 모든 핵개발 및 장거리 미사일 폐기및 포기조건으로 미국과 영사관계 맺음(워싱턴 D.C에 북한 영사관 설립)
IAEA대북 사찰단 북한에서 5년간 활동/미, 대북 금융제재 해제 및 양국 교역 개시

2009년, 북-일 대사급 수교협정
대일청구권 자금 80억~100억불로 조율/일본인 납치생존자 일본에 귀국 허용 및 사망자의 유골인계/조선노동당 명의의 사과문 발표 및 재발방지 약속

2010년 남북정상, 러시아에서 회동(2차 남북정상회담)
군축 및 이산가족 논의/판문점 또는 개성에 이산가족 타운 건설 합의

2015년 김정일 뇌출혈로 사망
후계구도 혼미속 과도정부체제 출범/신흥군벌과 개혁개방 세력간의 무력충돌

2016년 중국, 신흥군벌을 정통성 있는 정부로 인정, 미국 일본 러시아, 개혁개방 세력 지지 발표/한국, 제3의 민족주의 파벌 지지 발표

2017년 권력투쟁 끝에 인민의 지지를 받은 개혁개방 세력 승리, 신흥군벌 숙청 및 민족주의 파벌과의 전략적 연대

2018년 국호를 광명 민주주의 공화국이라 짓고 제헌의회 구성
공화정 출범/임시대의원에서 8년 임기 총통 선출/태을당, 민주구국당 등 정당 구성

비사(秘史)
미,중 모두 북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했고 중국은 미국을 견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북한은 내부혁명을 통해 구질서를 극복했다. 그러나 신군벌파, 개혁개방파, 민족주의파로 나뉘는 바람에 정치적으로는 미중일러에 모두 영향을 받았고 민족주의파를 지원한 한국은 개혁개방파가 민족주의파와 전략적 연대를 추구함으로써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중국은 신군벌파가 패하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으나 개혁개방파가 이미 인민의 지지를 얻고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향후 10~15년 안에 북한은 붕괴하며 새로운 질서재편을 시도한다.
한미중일러 어느나라를 막론하건 북한에 완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이해관계가 엇갈린 북한내 각 세력이 어떤 모습으로 진영을 빨리 갖추느냐 하는게 관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