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말뚝의 진실>-1

원래 진실은 하나다. 한가지 사실을 두고 이것도 진실 저것도 진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설명을 보는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현재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교 문학부의 노자키 미츠히코 교수(野崎充彦, 조선문학 전공)는 일본인이 박았다는 쇠말뚝에 대한 연구 및 한국의 풍수지리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풍수사들’이라는 저서(1994년)까지 낼 정도였다.

노자키 교수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박았다는 쇠말뚝에 대한 연구는 현재 ‘중단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연구가 중단된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며 뚜렷이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일본인들이 쇠말뚝을 박지 않았다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 물증이 없기 때문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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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쇠말뚝이 일제의 풍수침략용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단서는 있다. 측량용 쇠말뚝과 풍수침략용 쇠말뚝은 그 생김새나 사용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토지측량이 전공인 전북대학교 토목환경공학부 조기성교수의 말.

“지형 측정을 위해 삼각측량(대삼각지점)을 할 때 산 정상 근처에 조표(造表)를 만드는 과정에서 망루를 고정시키기 위해 큰 못이나 쇠말뚝을 박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쇠말뚝 끝에 고리가 있거나 표석(標石)을 중심으로 빙 둘러 말뚝을 박는다. 최근에 발견됐다고 신고되는 쇠말뚝과는 모양이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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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충북 단양군청 지적과) 신분으로 주위에는 향토사학자로 더 잘 알려진 윤수경씨(尹洙慶·51) 역시 측량용과는 거리가 먼 쇠말뚝이 너무나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단양군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는 쇠말뚝 현장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일제 때 일본인들이 쇠말뚝을 박았다는 곳을 무려 81개소나 찾아냈다.

윤씨는 다른 지역보다 단양 지역에 유난히 쇠말뚝이 많이 박혀 있는 것은, 이곳이 예로부터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라 일본인들이 더욱더 지맥(地脈)을 차단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혹시 쇠말뚝이 박힌 장소들이 ‘측량 삼각점’은 아닌가 하여, 군청 지적과 직원들의 도움을 구해 측량 삼각점과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쇠말뚝의 위치가 측량 삼각점의 위치와는 전혀 맞지 않음을 밝혀냈던 것.

게다가 윤씨는 단양군수의 결재를 받아 작년 7월4일부터 9월2일까지 무려 55일 동안 현장답사한 결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쇠말뚝이 박힌 지점들을 정밀지도에 꼼꼼히 표시하면서 그것을 풍수학에서 중요시 하는 지세도(地勢圖)에 비교해본 결과, 쇠말뚝이 박힌 지점들이 대개 풍수상의 중요 혈처(穴處)였다. 예컨대 마을이나 어떤 지역을 인체로 비유할 때 눈, 코, 목 등과 같은 중요 부위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럼 우리가 우리 얼굴에 여기저기 쇠말뚝울 박았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터,
를 보면 좀더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