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보수파 이념갈등

후진타오-보수파 이념갈등
[한국일보 2005.11.16 05:13:22]

‘후야오방(胡耀邦)’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급진 개혁파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발단이 됐던 후 전 총서기의 탄생 90주년이 20일로 다가오면서 중국 지도부의 이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후에 대한 재평가는 국가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는 폭발성 때문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정권 출범 이후에도 언급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그러나 톈안먼 사태를 기화로 권력을 장악한 장쩌민(江澤民) 정권과 달리 후의 4세대 지도부는 이런 피의 유산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 재평가는 언젠가는 제기될 문제로 예측돼 왔다.

후 주석이 간쑤(甘肅)성 관리였던 1980년대 후야오방이 그의 정치적 대부 역할을 한 개인적 인연도 부각됐다.

후의 탄생을 즈음해 후 주석이 계획했던 각종 추모식과 행사가 최근 우여곡절 끝에 대폭 축소되거나 당국에 의해 막판 제지된 것은 재평가를 보는 지도부의 인식이 얼마나 복잡미묘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초 후 주석은 당일인 20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5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추모식을 열고, 후의 고향인 후난(湖南)성 류양(瀏陽)시에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고 권력기관인 9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 보수파로 분류되는 4명의 위원이 우려를 표명하면서 후에 대한 재평가를 두고 지도부의 이념 논쟁이 불붙었다.

결국 추모식은 후 주석이 참석하지 않는 소규모 행사로 대체하고 기념관 건립은 중단되는 것으로 봉합됐지만 후 주석과 보수파의 이념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게 중론이다.

리창춘(李長春) 뤄간(羅幹) 등 장쩌민의 상하이방(幇) 인사로 분류되는 보수파는 후에 대한 재평가가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 요구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는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장쩌민 정권의 정통성이 훼손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후 주석이 재평가 작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도 장쩌민의 막후 영향력을 차단하고 친정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가 작용했다.

후 전 총서기와의 연대를 지지하는 ‘공산청년동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산청년동맹은 회원이 7,200만 명에 달하는, 규모면에서 공산당보다도 더 큰 후 주석의 당내 최대 지지 기반이다.

후 주석은 장쩌민의 상하이방과 같은 역할을 공산청년동맹에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