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가 조만식선생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기억할까?

8.15광복직후 북한지역에서 상징적인 민족주의자로 등장한 분이 조만식 선생이다.  국내의 공산주의자들마저도 그의 지도력과 인품을 존경했고 인민정치원장으로 있을때는 김일성도 찾아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싶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련군정 당국자들도 조만식선생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 회유전술을 펼쳤다.  그런 가운데 소련군정의 양곡 수매강탈이 시작되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일제하에 굶주리던 백성들이 이제야 제손으로 지은 쌀을 마음껏 먹게 되나 했더니 소련군이  빼앗아 가야 되느냐며 결사 반대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정은 총과 폭력을 이용해 강제수매를 하였고 조만식선생과 사이가 멀어졌다.  그러던 차에 모스크바 삼상회담(1945년12월26일)에서 신탁통치안이 발표됐다.  공산당은 자유진영과함께 반탁을 외치다가 소련의 지령을 받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조만식은 북조선 민주당의 당수로서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시종일관 강력히 반탁을 주장하였다.  은근히 조만식을 시기질시하던 소련군정과 김일성세력은 고압적 수단을 써서라도 조만식을  반탁으로 돌아서게 만들어 이용하려고 작정했다.  신탁통치안이 발표된지 며칠후 소련군 정치사령관 로마네코 소장은 조만식을 초청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한마디를 남겼다.  “조선에 대한 후견제를 지지한다면 당신은 조선의 스탈린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을 반대한다면 우리는 당신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소.” 그러나 조만식의 정치적 신념은 확고 부동하였다. 자기는 죽으면 죽었지 찬탁은 못하겠다고 냉정 하게 거절하였다.  소련군정당국은 조만식의 승락만 있으면 북조선 정당사회단체의 대표자조만식의 명의로 신탁지지 의견 표명을 하기위해 이미 인쇄까지 다 해놓았던 상황이었는데 낭패가 아닐수 없었다.  그후로 정월초부터 4일간 수십차례를 로마네코가 왔다가가기도 하고 조남식을 부르기도 하면서  구슬르고 협박해 보았지만 그의 신념은 변치 않았다.  1946년 1월5일 드디어 조만식선생의 최후의 날이 왔다.  조만식선생이 위원장으로 있는 평남인민정치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참석자는 공산당측이 16명 민족진영파는6명이었다. 이미 결정난 싸움이었다.  조만식선생의 이름으로 찬탁지지성명을 결의하려는 것이었다.  조만식 선생은 위원장직을 물러나겠다고 표명하였다 소련군정의 회유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사퇴의사를 고집했다.   회의를 끝내고 조만식선생은 소련군 경비대에 의해 고려호텔에 감금되었다가 사동으로 이동되어  죄수대우를 받았는데 그후의 생사는 알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