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위] 성폭행당하는니 차라리 콘돔을 껴라!

성폭행 당할 위기에 처한 여자가 있다고 치자.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목숨 걸고 저항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겁에 질려 아무 소리 못하고 성폭행 당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첫번째의 경우는 운이 나쁘면 폭행 및 살해당할 소지도 있기에 강하게 저항하라고 주문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린 그 위기상황에 처한 여성에게 그저 추상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말뿐이 할 수 없는 것일까?

간혹 여성들이 재치있게 위기상황을 모면했다는 소식을 듣곤 하지만 운도 좋아야 하고 항상 그런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다. 정말 실제적인 성폭행 상황 대처법은 배운 적이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호신용 호루라기나 호신술 내지는 가스총 정도인데 그것 역시 상황의 기회가 주어질 때만 가능한 일이다. 정작 현실적인 대처는 성폭행을 감수하면서 범인에게 콘돔을 끼우게 하고 성병과 임신을 막아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살기 위해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상처를 감내해야하는 최후의 보루이겠지만…

강도가 나타났을 때 지갑만 털리고 목숨을 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상황적 예시는 실제 성폭행의 위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바로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농민과 노동단체 및 학생들이 벌이고 있는 시위현장에도 적용된다. 그들은 왜 머나먼 홍콩까지 가서 WTO라는 거대한 권력기구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바로 그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생존이지만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는 농업을 개방하는 데 그치고 만다. 물론 식량주권 사수라는 절박한 심정을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식량주권만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현재 약 26.8%이며 일본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식량이 인간생존의 문제라면 에너지는 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문제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자급률은 놀랍게도 3.8%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탱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국가라는 단위를 운영하기에 모자라는 것이 너무 많다. 중요한 대부분을 국외에서 수입해야 하다보니 자칫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허약하게 무너질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구라는 거대한 운명 공동체 안에서 무척 낮은 지위를 갖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국력이다. 세계사에 로마와 대영제국 그리고 팍스아메리카는 있지만 대한민국은 없었다. 그저 고구려라는 아주 오래된 옛날 동북아의 맹주정도였던 것이 우리가 내세울만한 역사의 한 장이다.

작금의 현실도 비단 과거와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안정적일 뿐이다. 하지만 안정은 불안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 어떻게 문명과 야만이 충돌할지는 미지수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에서는 홍콩에서의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국가체면을 구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들의 염원 탓이었을까? WTO는 협상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눈이 홍콩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다소 폭력적이고 저돌적인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협상에 임해서 얻을 수 있는 점은 많았을 것이다. 과거에 농민자살까지 이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협상을 이끌 수 없는 것도 WTO의 고민일 것이다.

우리가 홀로 WTO와 맞서 싸울 수는 없다. 그것은 상기했던 것처럼 성폭행의 위기에 직면한 것과 다름없다. 무작정 저항할 수도 없고 끽 소리 못하고 성폭행 당할 수도 있다. 결국은 울며겨자먹기로 콘돔을 꺼내야 한다. 그것이 감성적, 2차적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길이다. 식량주권을 어떻게 극대화하는가의 전략적 문제로 귀결된다. 최소한 하나라도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고 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농업 개방을 통해 2,3차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겠지만 적어도 자국의 유리한 협상을 이끌고 있는 소중한 우리의 대표를 폭도로 규정하는 무례를 범해서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