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으로 훼손된 남북한 관계 바로 세우자.

 지난달 18일 타계한 DJ는 85세 생일을 맞은 1월 6일 인생역정을 회고하면서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일생이었으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고 회고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인이 되고서도 남북한을 하나로 묶고 갈등 관계의 지역과 계층 간에 화해의 물꼬를 트고 있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햇볕정책으로 인하여 2000년 이후 자랑스러운 기적의 한국 역사가 훼손되고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닌 남북한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의 회고 마지막 구절에는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다.그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따듯하게 포용하면서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교류·협력을 하면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하고 변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햇볕정책’을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정작 변화하여야 할 북한은 변하지 않았고 핵 실험, 미사일 발사와 서해북방한계선 침범으로 응답하였고, 한국 내부는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가 업신여김을 당하고 나라의 정체성과 함께 전통 맹방과의 혈맹관계도 흔들렸다.그는 북한과의 관계 유지를 우선시하여 서해북방한계선을 지키는 한국 해군 장병에게 선제공격금지 지침을 내려 장병이 희생당하고,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친북좌경세력들이 백주에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활동을 하는 데도 내버려 두었다.그는 북한 측과「6· 15 남북공동선언」을 합의한 후 1항 ‘우리민족끼리 통일’은 민족당사자 해결이며 2항 연방제 통일관련 부분은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포기를 전제로 합의하였다고 국민에게 설명하였으나, 그 후 북한이 1, 2항을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 합의로 해석, 주장할 때 한 번도 반박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김정일에 대한 현명한 지도자론과 북한변화론 주장은 한국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심화시켰으며, 그의 재임 중과 후임 노무현 전 대통령 재직 중 있은 일방적 퍼붓기 지원과 굴종적 행태는 국민들이 2007년 12월 19일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햇볕정책을 심판하는 요인이 되었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통행 제한 조치 등 3대 세습 분위기 조성을 위한 북한의 강경조치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혹한 제재와 이명박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끝내 북한을 유화 모드로 모는데 성공하였다.앞으로 남북한 당국이 그동안 경색되었던 남북한 관계를 풀고 새로운 남북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대화와 교류·협력을 재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대화와 교류·협력을 재개를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는 좌파정권 재임 시의 남북한 관계 패러다임을 바꾸어 계승할 것은 계승하되 잘못된 것들은 바로 세우기 위하여 당당하게 임하여야 한다.첫째, 남북한 당국 간 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통하여 북한 핵 폐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앞으로의 대화와 교류·협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둘째, 막연히「6· 15 선언」정신을 존중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선언에 대한 한국의 해석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것은 최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귀환한 당일 국무회의에서 설명한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셋째, 민간 기업이 주체가 되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더 이상 국고보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원리가 작동되도록 정상화하여야 한다. 개성공단에서는신변안전과 함께 북한 근로자에 대한 인사권을 확보하고, 금강산관광이 위험지역임을 알리고 금강산관광을 하는 교사와 학생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보조도 금지되어야 한다.이제 한국은 지난 10년간의 잘못된 정책으로 굴절된 남북한 관계를 비판만 하지 말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을 계기로 민족에게 주어진 갈등과 고난을 민족통일과 미래의 번영을 앞당기는 비전으로 바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