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을 만들어 주겠다.사기친 일본인../

한반도에서 ‘핵’이란 단어가 처음 거론된 것은 6.25 동란으로부터였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서 맥아더는 본국에 ‘핵폭탄’사용을 건의하게 된다.
장래 미국의 대통령을 꿈꾸던 맥아더에게 있어서
한국전의 패배는 그의 정치적 행보에 치명적인 악재라고 판단하였고,
그는 핵폭탄을 써서라도 한국전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트루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핵은 안된다고 못박았고,
맥아더의 경질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핵’에 관한 발언이 나왔던 시기였다.
전혀 의외이겠지만, 한국의 핵개발의 시작도 이때부터였다.
6.25가 한참이던 1951년 이승만은 핵개발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걸 실행에 옮기게 된다.
사실 이 당시 한국이 핵개발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핵개발이란 것에 돌입하게 되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서 핵탄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승만은 덜컥 ‘사기’에 걸려들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인 한명…
2차대전 당시 밧데리 공장에서 일했던 일본인 한명이
한국으로 건너와 이승만에게 사기를 쳤던 것이다.

– 핵폭탄을 만들어 주겠다.

당시 이 일본인은 자신에게 비밀공장과 자금을 지원해 주면
한국에 핵폭탄을 만들어 주겠단 제의를 하였고,
이승만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앞뒤 살펴볼 겨를도 없이
당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진해의 지하 기지를 제공하며,
각종 편의를 제공하게 된다.

이 일본인은 기생질과 술판을 벌이며 세월을 보냈고,
정부관계자들이 개발상황에 대해 물어보면
밧데리 몇 개를 얼기설기 엮어 폭탄이라고 말하며
진해앞바다에서 몇 번이고 폭파시연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사기 행각은 체 1년도 가지 못해 ‘
사기’란 것이 드러나 결국 쫓겨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핵개발 프로젝트는 그렇게 끝이 나게 된다.

– 본 기사는 기사 협약에 따라 미디어몹에서 제공되었습니다.- 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