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어떻게 볼 것인가?

NL의 경우,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반핵’을 ‘평화’의 개념으로 써먹은 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핵’을 자위수단이라고 옹호했고,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진보 진영(여기서 말하는 진보 진영에는 김대중, 노무현과 민주당은 포함되지 않는다)의 내부비판을 불러왔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진보 정당의 성립을 가져왔다. 비단 북핵 뿐 아니라 독재문제나 인권문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신뢰를 잃는 것은 당연하며 주사파가 아니라 공산당 소릴 들어도 사실 할 말이 없게된다. 반면,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의 핵은 무시하고 북한이나 이란, 중국등의 핵은 문제삼는 이중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 또한 안될 말이다. 탈냉전 시대의 국제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가변성의 관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미국도 가까운 미래에 잠재적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미 근대역사를 보라. 미국과의 관계는 처음에는 통상요구와 불응으로, 수호조약 체결로, 침략에 대한 묵인으로, 광복의 간접적 도움으로 바뀌어 왔다. 이 얘긴 앞으로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문장은 진부할지언정 틀리지 않는 말이다. 전자나 후자나 잊고 있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핵무기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일제의 잘못이든 미국의 잘못이든 한국인은 일본인과 함께 ‘핵무기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히로시마에서 3만, 나가사키에서 1만, 총4만명이 하루에 죽었다. 제일 참혹한 역사적 비극이었던 한국전쟁 때도 하루에 4만이 죽은 날이 있었던가? 그 뿐인가 아직도 숱한 사람들이 핵의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두 부류나,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는 핵의 무서움을 잘 모른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도 않고, 북한은 혹은 미국은 우리의 적이거나 적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이나 미국이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 될 수 있다고 치자. 그래도 어느 한 국가가 핵을 보유한 상태라면 그 국가와 맞서거나 대등한 힘을 갖기 원하는 국가는 계속 핵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핵 보유국이 우리의 우방인지의 여부를 떠나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핵무기의 위협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핵이 무서운 것을 안다면, 핵이란 것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안다면, 북핵이든 미핵이든 그 어느 것도 용인치 않고 비판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