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2007년 6월 주변국가에게 완전히 고립된 북한은 끝내 자강도 개마고원 지하에서 지하 핵폭발 실험을 감행하다.

2007년 7월 베이징에서 부시대통령의 특사와 후진타오 중국주석이 극비리에 회동을 갖다. 이 두 사람은 “모종의 사실”에 대해 합의한다.

2007년 8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의 극비회의가 열리다. 이 회의에서 한반도사태가 극히 위험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12월의 남한 대선에서 친미 친일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점과 김정일을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2007년 8월 같은 시기 워싱턴에서 국가 안보 보좌관 회의가 극비리에 열린다, 이 자리에는 국무 국방장관은 물론 모든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모두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중국과 모종의 사실에 대해 합의했으며 군사적 공격의 성공가능성과 전쟁이 일단 나면 상황을 과연 통제할 수 있는 지 집중적으로 검토된다.

2007년 9월 부시대통령은 미 합동참모본부에서 작계 5028을 바탕으로 작성한 작전명 “토네이도”를 승인한다.

2007년 9월 같은 시기 미국으로부터 군사공격 방침을 전달받은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소집된다. 전쟁이 났을때 남한의 피해상황과 한반도의 불안한 국제정세에 대한 무거운 토론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전쟁에 반대하기로 결정하고
부시대통령에게 전쟁에 참여할 수 없슴을 단호하게 통보한다.

2007년 9월 노무현대통령으로 전화를 받은 직후 부시대통령은 긴급 보좌관회의를 소집한다. 보좌관들 사이에는 한국대통령이 반대해도 한국군은 미군의 통제하에 있기때문에 문제없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그건 형식일 뿐이며 한국군은 실질적으로 결국 한국대통령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한국군의 60만 지상군 없이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2007년 10월 미 국방성 합동참모본부는 정밀폭격에 바탕을 둔 제한된 군사행동을 제안하고 부시대통령이 승인한다.

2007년 10월 50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영변기지로 발사되고 직후 F-117 스텔스기에 의해 영변이 재차 폭격을 받는다.

그 다음은 지금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끝난 후에 다시 올릴 예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