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숭미일변 외교안보정책이 테러를 낳았다.

어제,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테러. 그리고 안타까운 젊은이의 죽음.

특히 이번 테러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공격 또는 위협하기 위해
벌어진 일에 우리 군이 개입되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바로 그곳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몰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성공’한 미국은 뜬금없이 이라크로 눈을 돌려
그들의 목적이 ‘반테러’가 아닌 ‘석유’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공’했다고 믿은 아프가니스탄에서조차
미국은 실패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을 제거한 후, 아프가니스탄에 전혀 민주주의를 심지 못했다.
군벌간의 알력을 중재하지도 못했고
다양한 갈등들을 해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게 하지도 못했다.
결국 미국의 정책실패 속에 탈레반이 다시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 외교안보전략이
윤모 병장을 비롯한 애꿎은 생명 수십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다.

온 몸에 폭탄을 두르고, 적을 향해 달려드는 자살테러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욱 비판과 정죄를 받아야 할 이들은
그런 자살테러자들을 자꾸만 양산해내는 미국정부와
그것에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동참해 미국의 뒤를 애완견처럼 따르는
숭미일변도의 한국 정부일 것이다.

이제 곧 제대를 앞두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를 안타까운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건
바로 그들이다.

‘안보’란 ‘안전보장’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안보’정책은
오히려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박탈하고 있다.
‘외교’란 ‘외국과 친교한다’는 뜻의 말일 게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은
오로지 미국과만 친교하는, 그래서 세계에 적을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한 외교안보정책은 오직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그들의 안전만을 보장해 줄 뿐
민중의 안전은 윤모 상병처럼 언제나 죽음에 노출시키는 정책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다른 어떤 이의 삶이 아닌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이러한 미국과 한국정부의 전쟁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더 안전하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세계를 향하고 있는
미국의 총구가 돌려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애완견 노릇이 끝이 나야 한다.

다시, 반전을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