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요’에 대한 미국 시각

프랑스 ‘소요’에 대한 미국 시각
[문화일보 2005.11.12 12:21:02]

보름 동안 계속되는 도시폭동으로 인해 프랑스의 국제적 이미지
가 요즘 말이 아니다. 유럽연합의 양대축인 독일이 총선 후 정치
무력증에 빠진 데 이어 프랑스마저 폭동의 소용돌이 상태에 놓이
자 유럽이 지구촌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폭동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은 이중적이다. 사회민주주
의적 유럽모델을 지향해온 진보파들은 냉혹한 현실 앞에 유럽의
꿈이 이지러지자 착잡한 표정이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유
럽모델의 낙후성이 입증됐다며 내심 미소를 짓고 있다.

프랑스는 미국에 비해 이민자들에 대해 관대하고 정부가 무상제
공하는 복지혜택도 다양한 나라다. 그런데 이민자 폭동은 왜 각
박한 경쟁의 나라인 미국에서 발생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을 중시
해온 프랑스에서 일어났을까. 글로벌 도시전문가인 조엘 코트킨
은 최근 월스트리저널 칼럼에서 이같은 원인을 역설적으로 자유
경쟁적 경제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프랑스는 이민자집단에 대해 사
회복지 위주로 접근, 장기적으로 이들이 주류사회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으나 미국은 이민자들을 자유경쟁체제에 곧바로 편입
시키는 전략을 활용, 자생력을 키우며 사회체제내로 통합시켰다
는 얘기다.

실제 파리와 뉴욕의 모습은 아주 다르다. 파리는 제국의 수도답
게 거대한 광장과 호사스러운 건물이 장중함을 느끼게 하지만 어
딘지 모르게 박물관같은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반면 뉴욕은 최
첨단 고급빌딩과 지저분한 건물이 공존하지만, 거리엔 늘 활력이
넘친다.

폭동의 발화점인 파리 근교 클리시 수 부아는 60년대 이후 ‘이
등시민의 집단거주지’로 고착됐지만 뉴욕은 서민 주거지라 해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뉴욕 이민자들이 초기 정착하는 플러싱의
경우, 이민자들의 구성이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유대인
과 한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살았으나 점차 돈을 벌면서 중산
층 거주지로 이동해 요즘엔 중국과 베트남계가 주류다.

얼마전 플러싱 거리에서 한국사람인 듯한 행인에게 길을 물었더
니 모두 중국 사람이었다.

뉴욕과 파리의 명암은 글로벌시대 이후 더 뚜렷해졌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엔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며 일자리가 늘어났고, 유럽
의 일자리는 거의 정체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네오콘 싱크탱크
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펴내는 격월간지 ‘아메리칸 엔터
프라이즈’ 최신호(10~12월호)는 미국과 유럽의 지난 10년을 적
나라하게 대비했다. 이 잡지의 특집 ‘블루 유럽, 레드 미국’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03년까지 미국의 일자리는 1억1900만개에서
1억3800만개로 늘어났다.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3개
국의 일자리는 같은 기간 8200만개에서 8500만개로 소폭 증가했
다. 미국의 실업률은 1995년 6%에서 2005년 5%로 떨어졌지만 프
랑스의 실업률은 이 기간에 11%에서 1%포인트 줄었을 뿐이다. 특히
이번 폭동이 발생한 이민자 집단거주지역의 실업률은 40%가 넘
는다.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도 천양지차다. 미국인의 경우 57%가 만족
하고 있지만 프랑스인은 14%에 불과했다. 일자리가 없으니 현실
에 불만을 갖게 되고, 작은 계기만 생겨도 폭발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 아만포르 CNN 특파원이 클리시 수 부아 지
역에서 만난 아랍계 폭동가담자에게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더
니 얼굴을 가린 청년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면접을 보러가면 어
디 출신이냐, 어디 사느냐를 묻곤 문을 닫아버린다”고 답했다.

비록 프랑스 국적은 지녔지만 영원한 이방인으로 차별받는 게 바
로 이들 빈곤층 이민자 2세들인 것이다.

프랑스 폭동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시대가 본격화
하면서 빈부격차는 모든 나라에서 점점 커지고 사회소외집단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도시폭
동의 역설적 교훈은 프랑스형 시혜성 복지보다 일자리 제공을 통
한 미국형 사회통합이 좀더 안전한 사회통합 방법임을 시사해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