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

 
사법부내 좌편향 사조직을 해체하라.‘편향판결 논란’ 40년전 日과 닮은꼴몇몇 판사의 판결 성향을 놓고 정치권과 사법부가 대립하는 요즘의 모습은 40여년 전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과거 일본 법원에서 세력이 컸던 ‘청년법률가협회’(청법협)를 ‘우리법연구회’와 비교하며 해체 촉구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1960년대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에는 진보 성향 판사가 많았다. 최고재판소는 66년 “공기업 노조활동을 처벌할 수 없다”고, 69년에는 “교사의 노조활동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자민당 정권은 69년 보수 성향의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 판사를 최고재판소 장관에 임명했다. 이시다 장관은 진보 성향의 판사가 70세 정년을 맞아 최고재판소를 떠날 때마다 보수 성향의 법조인을 후임에 앉혔다. 73년 이시다 장관 자신이 퇴임할 때 최고재판소는 ‘보수의 아성’으로 탈바꿈했다.변화의 물결은 하급심에도 몰아 닥쳤다. 진보 성향의 청법협에 속한 판사들이 시국사건 등에서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잇달아 내리자 자민당은 법관 인사제도 개선 등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70년 당시 청법협 소속 판사 회원의 숫자는 225명으로 전체 법관의 약 10%에 달했다.“정치권이 법원과 판사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사법권 독립이 침해당할 것”이라고 판단한 최고재판소는 먼저 손을 썼다. 청법협 소속 판사들한테 탈퇴를 명령하고, 형사사건에서 ‘튀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청법협에서 활동 중인 사법연수생은 법관 임용 자체를 하지 않았다.2005년 출간된 ‘일본 최고재판소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이시다 장관은 “판사가 정치적 활동을 하는 단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해도 ‘저런 사람이니 그런 결론이 나왔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