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욕심들 때문에 화형당한 경찰

추한 욕심들 때문에 화형당한 경찰   용산 사태에 대하여, 그것을 돈없고 갈 데 없는 가련한 서민의 마지막 남은 것을 ‘철거’라는 이름으로 때려부수는 공권력 대 난파당하는 난파서민의 이미지로 선동분자들이 퍼뜨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철거민이라 하면, 고 박정희 대통령 시대, 도시 곳곳에 산재하던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빈민굴 같은 판자집들을 때려부수던 일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허나, 더 이상, 오늘날은 그런 철거민 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려거든 방글라데시로 가면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60,70년대 개발시대의 이미지를 오늘날 국가공권력과 투쟁하기 위해서 써먹는다는 것입니다.  낡아빠진 이미지가 계속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만약, 60,70년대 그런 반강제적 철거의 시대가 없었던들, 오늘날의 서울의 세계적 대도시로의 발전은 고사하고, 도심 곳곳 사방에는 지금까지도 방글라데시 비슷한 판잣집들로 주류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버지니아텍의 살인마 조승희란 학생이 벌인 무차별적인 살인사건은 조승희가 자살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그 때, 조승희가 죽은 것을 두고, 희생자들이 조승희를 죽인 살인자다 라는 미친 역발상은 아무 데서도 일어난 적 없습니다.  용산사태에서 주어지기로 한 보상금을 거부하고 화염병시위로 나선 사람들은 90%를 뺀 10%에 해당합니다. 듣자 하니, 보상금 액수만도 일억이 넘어 이억에 가까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억이라면, 지방 사는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액수입니다.  그것을 더 받겠다고 신나를 경찰을 향해 뿌렸습니다. 그 경찰관들은 어느 만한 재산을 갖고 있었을까 ? 궁금하지 않습니까 ?  용산의 사태는 가진 자들이 더 갖겠다고 과욕을 부린 데서 시작합니다.  때로는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싫어도 내어주고 이사하여야 할 때가, 그럴 순간이 있는 법입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자기 물건을 늘어놓고 장사하겠다고 하던 중,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는다면, 그 책임은 노전을 벌였던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자동차가 살인마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한 이래, 온갖 구실로써,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러는 온갖 기도가 획책하였습니다.  용산의 사태는 가진 자들이 더 갖기를 바라다가 자신들이 신나를 쏟고 불에 타 죽은 사건입니다.  거기에 아까운 우리의 경찰이 무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더러운 욕심 때문에 애처로운 청춘이 희생당한 것입니다.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참혹하게 새까맣게 불에 타죽는 화형의 살해를 당했습니다. 어찌 갚습니까. 인생이란 것이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인데, 남을 위하고 70%가 찬성한다면, 기꺼이 그 뜻을 따를 수도 있어야 하는데, 용산에 남은 10%는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욕이 부른 재앙이고, 과욕 탓에 우리 젊은 청년, 경찰관 까지 죽은 것입니다.  조금 더 받겠다고 화염병에 신나까지 쌓아올린 그 사람들이 저희 실수로 죽은 것은 전혀 아깝지 않으나, 그 탓에 살아갈 인생이 창창한 우리 젊은이, 경찰관이 불에 고스란히 타 죽어간 일은 우리를 쓰라리게 합니다.  그들이야 자기 실수로 자기를 죽게 했다고 치겠지만, 경찰을 향해 신나와 화염병을 던졌던 일은 경찰을 살해하려 한 미필적 살인에 해당한다고 믿습니다.  국가는 용산의 화염병 폭민들에게 경찰을 향한 미필적 살인의도가 있었는지 추궁하고 단호히 형법에 맞는 처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짓밟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화염병으로 민주경찰을 살해하였습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나, 민주경찰이 살해된 일은 엄중히 처벌하여야 할 일입니다.  용산, 그들이 깔고 앉은 그 땅 자체가 과거, 용산 정말 판잣집에 살던 철거민들이 눈물을 뿌리며 철거당하며 떠난 그 현장 위에 세워진 건물이었으니, 실로 과거는 잊고 당장의 욕심에만 눈이 멀었구나라고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 모두가 이 땅 아래에는 오늘의 이 풍요한 시대를 열어주기 위했던 숱한 사람들의 희생이 깔려 있습니다.  남의 희생은 당연히 알고 자신의 희생은 절대 못하는 어리석은 만용과 이기심을 버립시다.  파아란 한은경대한민국지킴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