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 “예”하는 야당되어 보아라

벤 넬슨 미국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다. 넬슨이 2006년 상원의원 재선에 도전할 때 지역구까지 찾아와 지지 연설을 했던 유일한 사람이 오바마였고, 오바마가 이듬해인 2007년 대선 도전에 나서자 가장 먼저 지지 선언을 한 현역 의원이 넬슨이었다. 한국식 분류법에 따르면 넬슨은 오바마 정권 주류에 속하는 의원이다.  그런 그가 최근 오바마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건강보험 개혁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야당의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돌파하려면 상원 100석 중 60석이 필요했는데 넬슨이 마지막까지 정부·여당 안(案)에 공개적으로 “노(no)”를 되풀이한 것이다. 오바마는 12월에만 세번이나 그를 따로 만나 설득했고, 피트 로즈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넬슨 전담맨으로 지정했다.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도 매일처럼 넬슨을 만났다. 이런 긴 설득과 지역구 지원 약속까지 내놓은 뒤에야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여당 주류이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의원이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는 법안을 처리하는 데 이렇게 애를 먹인다는 것은 한국 정치 풍토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미국 의회의 건보 개혁안 처리 과정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제2, 제3의 넬슨이 수두룩하다.  반대로 공화당 소속 올림피아 스노 상원의원은 야당 의원이 “예스”라고 한 경우다. 스노의 찬성 덕분에 건보 개혁안은 상원 재무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원 전체 표결에선 민주당 의원 39명이 무더기로 반대표를 던졌지만 공화당 조지프 가우 의원의 찬성 표에 힘입어 간신히 절반을 넘겼다. 물론 표결 결과만 놓고 보면 미국에서도 여야 의원 절대 다수가 당론을 따랐다.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일제히 “미국 정치에서 초당적 협력의 전통이 사라졌다”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미국 정당의 당론 투표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당 지도부가 미리 정한 당론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는 없다. 당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민주적 절차를 이루고 있다. 이번 건보 개혁안 논란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여와 야, 찬·반으로 갈린 이익단체들이 국민 홍보용 광고비로 쓴 돈만 11월 초 현재 1억5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1800억원에 이른다. 지난 8월에는 미국 전역에서 건보 개혁안을 둘러싼 타운홀(주민회관) 모임이 일제히 열렸다. 미국만의 독특한 타운홀 모임은 알렉스 토크빌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가르치는 학교”라고 극찬했던 공론(公論)의 장이다. 그러나 올여름엔 양측이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갈 정도로 격렬히 부딪치면서 ‘타운헬(주민 지옥)’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이런 대형 정쟁을 의회 안으로 끌어들여 가(可)든 부(否)든 결론을 짓는 게 미국 의회와 의원들의 힘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국회와 의원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은 독자적인 여야 중재안을 만들었다가 당내에서 ‘왕따’ 취급을 받았다. 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대치를 풀려고 동분서주했던 한 여당 중진은 “당에서 공개적으로 괜히 엉뚱한 짓을 벌여 전선(戰線)을 교란시킨 이적행위자 취급을 하더라”고 전했다. 전(前) 정권 시절 한 여당 실세는 당론에 반대 의견을 펴는 의원을 향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공개 면박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당내 계파 보스와 다른 의견을 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비난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의원 개개인의 소신과 의견은 사라지고 대신 ‘패거리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로 국회의원이 되면 모두 이 헌법 조항과 같은 내용의 선서를 한다. 그러나 이 선서가 끝난 순간부터 국회의원은 당론의 졸개가 되고, 몸싸움의 행동부대원으로 전락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한국 정치의 악습이다. 국회의원의 용도가 이 정도밖에 안될 바에는 굳이 선거로 뽑을 필요도 없다. 체력장에서 몸 튼튼한 순서로 뽑아 제식훈련을 시킨 뒤 국회의원에 임명하면 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국회에만 들어가면 이 정치 풍토가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듯하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고, 국가적 쟁점을 푸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 국회와 정치가 제 구실을 하려면 여당은 정부에 대해 “노” 할 수 있고, 야당은 “예스”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차지한 자리의 엄중함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