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는 해도해도 너무한다.

전남신안출신 김대중과 전남강진출신 노무현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국가 유공자로 만들기 위해 국가 보훈처 규정에 있는 “공산주의 자늘 서훈을 제한한다”는 조항을 삭제하여 공산주자들은 국가 유공자로 만듬으로써 북한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에 위반하는 행동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거나 전복시키려 했던 인물들이 국가 포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또한 “대한민국의 상훈법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자에 대한 서훈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공산주의 자를 국가 유공자로 계속하여 대한민국에 올리는 이러한 행동은 명백한 이적행위이다.
여기에 대한 관련 자료를 몇자 적어본다.

김철수=이번 광복절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김철수 (金& #37667;洙)(1893~1986)는 공산주의 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중에 하나이다.김철수는 전북 부안출신으로 1912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과에 입학했다 중퇴했으며, 국내 공산주의세력 초기형성과정 참여 하였고 특히 이동휘(1995년 대통령장 서훈)와 함께 소위 상해파 공산당의 핵심적인 활동가로서 국내 공산주의세력의 초기 형성과정에 참여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1921년 중국 상하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립하고 재무담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개혁 방안을 논의한 국민대표회의에서 생계위원 및 비서로 선임되어 개조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귀국, 1925년 12월에는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김철수는 1926년 6ㆍ10만세 사건으로 제2차 조선공산당 간부진이 검거되자 그 해 9월 제3차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고 중앙집행위원이 됐다.
김철수는 1927년국외로 망명해 1929년 중국 길림성 돈화현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활동하다 체포돼 징역 10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1944년에 다시 체포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해방을 감옥에서 맞았다.
해방 이후에는 박헌영에 반대하다 물러나 1946년 여운형과 함께 사회노동당을 창당해 임시중앙위원을 지냈으나 1947년 7월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하고 고향 전북부안으로 낙향해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여생을 보냈고 1986년 사망했다.

김산(본명 장지락)=김산은 님 웨일즈의 저서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24년 고려공산당 북경지부 설립하고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 등의 항일투쟁을 하다 33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게 일본 스파이로 몰려 1938년 중국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됐다. 김산은 중국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이 고영광이다.

여운형(1885~1947)=신한청년당 당수로 임시정부 외무차장과 상해 조선교민단장을 지내고 공산주의 조선 건국동맹을 결성하여주도한 인물이다. 박헌영 계의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의 주구, 전형적 기회주의자요 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미국과 우익으로부터는 음흉하게 위장하고 있는 빨갱이, 김일성과 한통속이라는 저주를, 김구 등의 우익 민족주의자들로부터는 일제의 주구라는 욕을 들은 인물이다,
여운형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던 건국동맹과 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민족주의 조직, 다른 쪽에서는 인민공화국의 전신이라는 주장이있다.
또한 여운형이 관여했던 세 개의 정당은 인민당, 사회로동당, 근로인민당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했다.
보훈처는f몽양 후손에게 건국훈장을 전달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 중이다. 몽양의 유일한 혈육인 딸 여연구(77)씨가 북한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씨는 현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조국전선중앙위원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보훈처는 훈장을 남쪽의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가능한 한 여씨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권오설(1897~1930)=3,1운동에 참여했고 그후 조선 노동총동맹 집행위원.제2차 고려공산당청년회 책임비서로 활동하다.6,10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돼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구연흠(1883~1937)=중국 공산당 강소성위원회 한인지부 책임비서로 활동했으며 6,10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김재봉(1891~1944)=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활동했으며 3,1운동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