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안중근의사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러.일 전쟁후 일본은 지금의 서울에 총독부를 두고 조선반도에 대한지배를 강화

하였다.한국인들은 넓게 항일운동을 일으키고 1909년 이토우 히로부미가 청년 안

중근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었다](일본 초등 학교 교과에서)

일본최초의 수상을 암살한 안중근의사는 그후 체포되어 여순의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안중근의사의 수감 감시자로서 일본 관동군 상등병 치이바 토우이치였다..

그후 사형이 집행될때까지 5개월간 인간적 친분을쌓았다.처음 치이바도 안중근의

사에게 적개심과 심한 노여움을 느꼈으나안중근 의사는 신문중에도 당당하게 대응하였으며,

이토우개인에게 원한이 있는것이아니라 일본의 한국지배의 부당성을 15개항목으

로 호소하였으며 자신들의 행위는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의거라고 주장하

였다.그는 옥중에서도 항상 솔직하였고 예의바른 태도를 잃지 않았다..안중근 의

사는 그에게[나라의 평화라는것은 가난하더라도 우리들은 독립해서 살아가고싶

다]라고하였다1910년2월14일 사형의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그전 [너의 죽음은 너 혼자만의것이 아니라 한국의 민중의분노

를 떠맏고 있다 공소를 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구걸하는것과 다를바 없다]라고 편

지를 보냈다..

나름대로 요약- 역 maron-출저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역사]에서..

일본인들도 안중근 의사의 숭구한 애국심을 일본인들도 배우자라는 내용 일

것입니다..애국심을 강요 할수 없으나 숭고한 안중근의사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

을 다시한번 새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