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국정연설과 나의 기우

오바마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은 솔직히 그가 얼마나 코너에 몰렸었는가 하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1년간 그가 ‘초선의원 대통령’으로 보여주었던 미숙함을 털어버리려 작정했다는 듯한 인상을 내내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27일 오후 6시 10분께(서부시간, 동부시간으로는 오후 9시 10분) 시작된 그의 연설은 내내 초당적 협력, 그리고 지금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조치든지 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적 이슈에 있어서 오바마는 일단 이라크에 파견된 군인들을 8월까지는 철수시키겠다는 것을 비롯, 거의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이야기하고, 특히 이민 문제와 교육 문제 등을 강조하고 이를 개혁하겠다는 그의 입장을 가시화해 지금 당장 미국 국내의 문제가 급한 발등의 불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경제 문제에 있어 오바마는 기업들이 미 국내에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세금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도 강조했습니다. 또한 국제 교역에 있어서도 원칙을 강조, 앞으로 미국이 보호주의로 갈 것임을 분명히 했고, 이는 이 자리에서 내내 오바마의 의견에 대해 차가운 반응을 보이던 공화당 소속 의원들까지도 기립박수를 치게 만들어, 지금의 미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더욱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면에 있어서, 오바마 역시 국민과 의회의 요구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솔직히 제겐 실망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선 당시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를 강조하던 그가 적어도 무역정책에서 ‘미국산 물건을 사도록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한것은 경제적 상황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과거 수퍼 301조 등을 들먹이며 시장 개방 압력을 가하던 미국의 모습으로 다시 환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들게 만들었고, 아울러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다시 정치적, 군사적인 패권주의로의 회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역시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가 강조했던 ‘미국의 가치’가, 미국의 패권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결국 앞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게 되겠지요.  대내적으로 대형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조하며 결기를 발휘한 것과, 그가 추진하려 했던 의료보험에 대해 뚝심을 보인 것은 역시 그다웠습니다. 그러면서도 초당적인 협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으로 무척 고민했겠다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중간중간 영부인인 미셸을 띄우거나, 세금 감면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박수를 더 받을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등 유머러스한 모습도 보여준, 그의 전형적인 자신감 넘쳐보이는 연설이긴 했지만, 그 안의 내용은 분명 처음 당선 당시의 그의 모습보다는 개혁 의지라는 면에 있어서 일보 후퇴했다는,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행정부의 과도한 지출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예산 동결 및 일부 프로그램의 감축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 미국은 그 어느때보다도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0%가 넘는 실업률,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재정 적자 등등이 지금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공화당 정권에서부터 가져온 누적 적자임을 분명히 밝히긴 했지만 – 여기에 국제적인 긴장과 재해 등은 미국이 지금 당면한 위기를 더욱 무거운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핵 억제 정책으로서의 경제적 봉쇄 등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로서, 한반도에 대해 원칙적으로만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여기에 대해 국내 보수 언론들은 굳이 큰 무게를 실으려 할 것이란 게 뻔히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 시민으로서 오바마의 정책을 지지하지만, 앞으로의 대한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번 정책 기조연설에서 희망보다는 불안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가장 먼저 FTA 체결 압력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우리나라가 여기에 대처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면서 한국 정부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두통의 정도는 더욱 심해집니다. 미국은 자신의 보호무역 기조는 유지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을 열려 하는, 과거의 행보를 그대로 보여줄 것이란 게 이번 오바마의 연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의 연설을 듣고나서의 감정은 기대 반, 걱정 반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그걸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생각하면 걱정 쪽의 무게가 조금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바마가 그의 정책을 잘 펼쳐나가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해야 하는 딜레마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저 제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