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의싸움에서 패한 유신체제와긴급조치

역사와의싸움에서 패한 유신체제와긴급조치

“실명이 공개된 이들은 아마도 대부분이 부끄러운 일임을 고백하거나..”

송승호 기자

유신체제하의 긴급조치에 관련된 판결을 했던 재판관들의 실명공개가 이루어졌다.
실명이야 얼마든지 밝힐 수 있는 것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공개라는 것은 공식적인 것이라 일반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여기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현직에 있는지, 혹은 은퇴후에 어떤 생활을 하고있는지는 별로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법관의 법복을 입고 사회의 첨예한 갈등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재판관의 역할을 하고있는 그들에게서 잘못된 법령하에서 그렇게 판결할 수 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을 애써 들을 필요도 없다.

중요한 문제는 실명공개로 인한 해당 당사자들의 반응과 향후의 이들이 취할 태도 등에서 우리는 역사의 분명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이라면 이들은 당시의 불가피한 시대상황을 이야기할 것이고, 법령에 규정된대로 판결했지만 그 법령이라는 것이 초헌법적인 것이고 결코 국가긴급시의 법령이 아니라 독재정권의 위급성에 의한 권력유지의 방편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긴급조치로 인한 법의 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이없는 일을 겪은 셈인데 그것이 당대의 시대적 상황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도 결코 상식적이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기준이 아니라 당대의 기준에도 상식은 있는 것이고 인권은 있는 것이다.

실명이 공개된 이들은 아마도 대부분이 부끄러운 일임을 고백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인정할 것이다. 물론 억울하다는 나름대로의 항변도 있겠으나 결코 긴급조치라는 것이 정상적인 법의 기준이 못되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혹은 양심으로 그 긴급조치의 위법성이나 그 시대의 혹독한 탄압을 인정할 것이고 이것은 역사가 당대를 부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다.

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이 비록 당대에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아서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있었을 망정 결국 언젠가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

유신이라는 기괴한 체제가 만들어낸 초법적인 긴급조치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잔혹성과 폭력성, 그리고 비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면모들을 괴물의 흉측한 모습이 드러나듯 하나씩 그 허물을 벗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수치와 망신을 당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글쓴이는 애초에 실명공개의 이야기가 나왔을때 박정희가 역사앞에 부정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 거론되는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유신이라는 체제가 하나씩 부정될 것이고 결국은 이런 부정들이 모여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 는 예정된 수순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유신체제와 긴급조치가 당대에 불가피한 조치였고 대한민국의 총력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고 강변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국가적 위기상황이나 불가피한 조치가 아니라 단순히 독재권력의 위기상황을 폭력으로 억누르려는 발칙한 행위였을 뿐이라는 것은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해괴한 상황논리를 내세워서 기어이 역사와 맞서고 진실과 싸우려는 발칙한 시도는 이제 설자리도 없을 것이다. 부디 정치적인 성향따위나 그런 것을 가지고 진실과 맞서서 싸우지 말기를 바란다. 아무리 우겨도 스스로의 양심마저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
박정희와 유신체제는 결국 역사와 진실과의 싸움에서 참패한 것이라 그 이름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명을 씻을 길이 없으니 역사란 참으로 긴 인내를 요구하지만 결국 제 갈길을 간다는 사실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2007/02/01 [16:24] ⓒ plu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