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는 역대 최고의 외교관이 아니다

중앙일보 1월 15일자에는 최정예 외교관을 양성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가칭 ‘서희 외교 아카데미’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서희가 우리나라 외교의 대표적인 인물인가? 오해다.
서희는 고려의 장수로서 993년 요나라 장수 소손녕이 대군으로 위협하며 영토를 요구할 때, 적진 앞 마당임에도 기선제압 싸움에 물러서지 않고 우리측 입장을 관철시켰던 사람이다.
이 담판 승리의 배경에는 당연히 서희의 배짱과 용기, 영토의 유래에 대한 정연한 주장을 놓칠 수 없다. 그렇지만, 담판 직전 소손녕이 안융진 공격에 실패한 사건도 소손녕의 초조함을 가중시켰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간 왕과 조정이 굴복하여 땅을 떼주려 할 때, 그가 이와 같이 활약한 건 확실히 평가해줄 만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없다.
역대 최고는 신라의 김춘추, 고려의 정몽주라고 할 수 있다.
김춘추는 춤추는 듯한 외교전을 펼쳐서 한국의 키신저라고 부를 만 했고, 가장 까다로운 대당외교를 성공적으로 펼쳐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국관계의 초석을 깔았다고 할 수 있다.

정몽주도 뒤지지 않는다.
대륙의 원, 명 교체기에 명나라와의 200년 외교의 길을 열었고,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왜구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그의 이러한 공로로 그는 죽었지만, 뒤이은 조선에 큰 영향을 끼쳐 사대교린의 외교정책을 채택하게 하였다.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실상 정몽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개별 외교적 성과보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를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서희는 외교관이 아니다. 당연히 외교관 양성기관 이름으로 서희는 적절하지 않다.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