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편협한 자여…..

우리가 학교 다닐 떼를 생각해 보자.  같은 반 친구라고는 하지만 대개 어울려 다니는 파가 나뉘게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 힘세고 돈 많은 놈을 중심으로 몰려다니는 시시껄렁한 집단도 있을 테고, 가난하고 공부만 잘하는 성실파들도 있을 테고, 어떤 문학 소년같은 우수파들도 있을 겁니다.  아예 양아치 집단도 있겠지요.   대개는 누가 누구와 같이 디니게 마련이지만, 그 중에서는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한 반에 한 명 쯤 되지요.  친화력 좋고 적을 만들지 않지요.   사람이 세상을 살 때 꼭 누구와 한 패가 되어야 하는가 마는가 하는 식의 이분법 속에서 고민하지 말기 바랍니다.  A 편 서면 B와는 적대하게 되고, B의 편에 서면 A와 당연히 적대 관계가 되는 것은 절대적인 룰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A와도 친하고 B와도 친할 수 있으면 그것이 최상입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의 친구는 모든 사람과 친합니다. 뭐하러 적을 만들고 다니겠습니까 ?   국제 외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국가와 국가 간에는 실리가 최 우선이기 때문에 친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친한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니까요.  그러면 가난한 나라보다는 부자 나라와 친하는 게 실리가 많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러시아 순으로 친하게 지내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와 친하면 그들의 종이라든가, 개라든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친하게 지내는 기술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 삐치고, 한을 갖고 있거나 부정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만 문제가 많을까요, 중국은 문제가 없고, 일본은 문제가 없습니까?  그런 문제 하나 하나에 삐치고 문제 삼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야겠다고 하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이제 오래간만에 우리는 감정보다 머리가 앞서는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감정보다는 그에 대한 실리가 머리에 먼저 떠 오르는 사람입니다.   노통 때는 대차 대조표를 이렇게 썼습니다.    대변에는 자존심의 증가 이면 차변에는 비용의 지출입니다.    그러나 MB는 자존심 상실이지만 이익 발생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태백과 오륙도, 사오정 같은 말이 다른 나라의 말처럼 들리시는 생각이 편협한 분에게 한 번 반론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