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숨어있는 무서운 비밀..

고려왕조 인종의 명을 받고 1145년 김부식이 완성한 한국최고의 역사서 삼국사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동족의 역사로 파악, 함께 다룬 이 한권의 역사서가 없었더라면 현대 한국인들은 고구려사를 또 백제사를 자신의 역사라고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신라는 660년 백제를 멸하고 668년 고구려까지 멸망시키면서 삼국사기가 기록한 삼국의 할거시대는 종지부를 찍고 통일신라시대를 연다.
그러나 삼국을 통일했다고 하는 신라는 삼국의 역사를 통합하여 정리한 역사서를 끝내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서는 고구려를 멸하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에서 거의 500년이나 지난 고려 인종때에 이르러 편찬된 것이다.
왜 일까?왜 고려는 했던 일을 신라는 하지 않았던 것일까?
오랜 분열기를 끝내고 통일왕국을 세웠다면 분명 신라 욍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반드시 삼국의 역사서를 통합한 새로운 통일신라의 역사서를 만들게 하지 않았을까?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볼때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게 다가온다.신라는 처음부터 고구려, 백제인을 동족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의 역사는 같은 동족의 역사가 아닌 단지 그들이 정복한 피정복국의 역사였던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고 해서, 또 영국이 이집트를 지배했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가 일본의, 영국의 역사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신라인들 역시 고구려 백제를 멸하고 그들의 땅을 지배한다고 해서 그들의 역사가 동족의 역사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신라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구려는 여전히 발해란 이름으로 그들의 북방에 자리잡고 있으며 백제역시 여전히 일본이란 이름으로 바다건너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신라가 통일한 것은 삼국이 아니라 삼한이었다. 옛 마한 진한 변한의 땅에서 마침내 부여계 민족들이 세운 고구려 백제를 축출하고 삼한의 땅을 신라의 이름으로 통일한것이다.
당시 신라인들의 역사인식은 이것이었다.
그러했던 신라인들이었으므로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가 필요하지 않았고 한반도에 남아있던 고구려인과 백제인들을 갈라졌다 다시 합쳐진 동족이 아닌 피정복민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신라말 신라왕실에 반기를 든 궁예와 견훤이 가각 후고구려, 후백제라 칭했던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신라는 하지 않았던 삼국의 역사서 편찬을 고려는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을 지혜는 이렇게 추론한다.
알다시피 고려를 세운 왕건은 신라 북변에 있던 고구려계 호족의 지도자였다.
그랬던 그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지금까지 신라북방의 소수세력이었던 고구려계가 이젠 구 통일신라의 지배자가 된것이다.

고려왕실로서는 다수의 신라인들을 다스리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했다. 즉 고구려와 신라는 원래 한 동족이었다라는 사실을 피지배층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던 신라인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려 인종은 신라왕실의 후손인 김부식에게고구려사와 신라사, 그리고 고구려의 동족이 세운 나라 백제사를 합한 삼국사기의 편찬을 명한것이다.
신라땅에서 일어난 고려왕실은 삼국사기를 통해서 자신의 조상인 고구려, 동족의 나라였던 백제, 그리고 고려왕조의 근간이 된 신라를 함께 아우르는 삼국사기를 통해 삼국의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삼국사기는 고려왕실의 신라계승성을 정당화시켜줌으로써 왕권확립에 도움을 주고, 한편으로서는 북방의 구 고구려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수 있는 근거도 확보시켜주는 일거양득의 무기였다.

삼국을 하나의 동족이라고 인식하는 역사관은 고려시대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라왕조를 계승한 왕권의 출신적 제약, 즉 고구려계라는 약점을 감추기위한 의도에서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
한국의 역사왜곡은 이미 고려시대, 삼국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