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협상 제안 의도

북한은 원칙적으로 ‘군사문제의 대미협상’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이 남한의 군사주권을 갖고 있는 이상 실질적인 협상 당사자’라는 것이 북한의 기본입장이다. 그 중에서도 핵문제의 대미협상은 탈냉전시대 북한군사외교의 핵심이다. 북한은 1994년 10월까지 계속된 미국과의 핵협상을 거치면서 자국 체제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그것이 미·북 협상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나타난 것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일련의 남북한 군사협상이 추진되면서 북한의 입장변화가 기대됐으나, 본질적인 군사문제인 핵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국방장관회담 직후 북한인민군 총정치국장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함으로써 남북한 군사협상을 대미협상카드로 활용했다. 그런데 지난 9월 4일 북한이 그동안 미북 간의 협상문제로 제기해 온 ‘핵문제’ 논의의 중요한 변수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언급하더니, 9월 18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자 또는 양자 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중단됐던 북핵 협상이 새로운 국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식의 협상 제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북한 군사협상의 경우, 1990년대 초 남북고위급회담 시 북한은 남한이 평화협정 이행 당사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군축·불가침 같은 평화체제 문제는 남한과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 부속합의서’는 물론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까지 채택했다.  하지만 북한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분야의 어떠한 합의도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핵을 개발했다. 2000년대 초 분단 이후 최초로 개최된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배제된 군사평화조항이 ‘공동보도문’ 제2항으로 추가됐으나, 북한이 철도·도로 연결에 집착함으로써 원칙적·선언적 언급으로 끝나고 말았다. 2007년 ‘10·4 선언’에서도 남북한은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협력을 명문화했고, 제3항과 제4항에서는 남한을 평화체제 당사자로 인정했다.  특히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 이행을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 의지까지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10·4 선언’ 이후로도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핵위기를 조성하면서 핵문제 등 본질적인 군사문제를 여전히 미국과 해결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표명한 ‘양자 및 다자대화’ 용의는 남한을 포함한 ‘다자대화’보다 미국이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제시한 ‘미·북 양자대화’를 의도한 것이다. 94년 여름에도 북한은 미·북 핵협상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서방과의 대타협을 모색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8일부터 평양을 방문한다. 보즈워스 대표는 방북에 앞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등을 면담하고 미·북 대화의 의제와 방향 등을 최종 점검했다. 그는 평양을 방문, 2박 3일간 체류하며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등과 양자대화를 할 예정인데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94년 10월 제네바 미·북 합의를 통해 체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던 것처럼 미·북 협상을 통해 후계 문제와 경제난으로 불안한 체제의 존속을 보장받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군사협상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