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발에 강력히 막아야

해군은 15일 경기도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1차 연평해전 승전(勝戰)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 행사는 작년까지 제2함대사령부가 치러오다 올해부터 격(格)을 높여 해군본부가 주관하게 됐다.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북한군 함대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자 우리 해군이 고속정으로 부딪쳐 북 어뢰정 1척을 침몰시키고 경비정 5척을 대파한 전투였다. 우리 해군은 초계함·고속정이 가벼운 선체 손상을 입고 9명이 다쳤을 뿐이다. 그러나 6·25 후 최초의 정규전이었던 1차 연평해전은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당시 2함대 사령관이었던 박정성 예비역 소장은 “1차 연평해전 승리가 해군의 큰 자랑임에도 햇볕정책 때문에 마치 죄지은 것처럼 돼버렸다”고 말했다. 2004년 해군이 인천 월미공원에 승전기념탑을 세우려다 시민단체 반대로 취소한 일도 있었다.더구나 군은 1차 연평해전 이후 NLL을 침범한 북한군 함정에 대해 ‘몸으로 막는’ 차단기동→경고방송과 퇴각요구→경고사격→위협사격을 거친 뒤에야 조준사격을 허용하는 교전규칙을 만들었다. 2002년 6월 29일 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북한 경비정에 격침되고 해군 6명이 전사한 것은 그렇게 안이한 교전규칙 탓이 컸다.당시 교전현장엔 압도적 화력을 갖춘 해군 고속정 6척과 초계함 2척이 배치돼 있었지만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합참의장은 국회 답변에서 “전면전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해 사격을 못했다”고 했다. 군사 긴장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차단기동’ 교전규칙이 아까운 장병들 생명을 희생시킨 것이다.지금 서해에선 북한군 판문점대표부가 “정전협정은 구속력을 잃었다. 서해의 선박 안전을 담보 못한다”고 선언하는 등 긴장이 고조돼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 8일 전군에 “적이 도발해오면 현장지휘관이 가용(可用)한 합동전투력으로 최단시간 안에 승리로 작전을 종결시키라”는 지휘서신을 보냈다.1, 2차 연평해전의 교전시간은 14분, 18분에 불과했다. 현장지휘관이 확전(擴戰)을 우려하거나 지휘부 지침을 받겠다고 우왕좌왕하면 패전을 불러올 수 있다. 1, 2차 연평해전의 교훈을 되새겨 교전상황에선 적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대응태세를 갖추는 것이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막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