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부 개입설의 허구

최근 북한측에서 철도 시범운행의 일방적 파기를 통보하자 현 정권과 일부 언론은 북한내 군부의 개입설을 들고 나왔다. 김정일의 개혁개방의지에 위기를 느낀 북한 군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다. 2002년 서해안 교전으로 국군 사상자가 났을 때도 김정일의 개혁의지에 반하는 북한군부 개입설이 나돌았다. 즉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김정일의 독주에 위기를 느낀 북한군부가 저항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북한의 개방을 위해 햇볕정책을 수용한 김정일이 미국 네오콘의 강경노선과 더불어 이제 북한 군부의 저항에 부딪혔다는 해석이다.

반면 현 정권의 수뇌들은 DJ의 김정일 방문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는 김정일의 막강한 권력을 강조한다.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에도 어김없이 북한정치에서 김정일이 갖는 최고권력을 근거로 내세운다.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한반도 평화통일의 지름길이라는 논리다. 김정일의 교시가 신의 계시로 수용되는 북한식 수령유일체제를 흔히 그 근거로 든다.

김정일의 파워가 막강하다면 어떻게 군부가 철도 운행을 파기하겠는가? 군부가 김정일에 저항할 수 있다면, 어떻게 김정일의 권력을 막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명백하게 모순된 주장을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펼치곤 한다. 이들은 명백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북한 군부와 김정일이 사실은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북한 정권의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했을 때, 김정일은 강경파와 결탁했다. 황장엽이 온건파의 수장으로서 김정일의 강경노선에 대항했던 저항 엘리트였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이다. 그 결과 북한 정권은 1997년 말엽부터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돌입했다. DJ와 만나 술잔을 부딪히고 6.15공동성명을 발표할 때에도 북한의 핵개발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핵개발을 추진한 것은 김정일인가, 북한의 군부인가? 김정일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때, 위기를 느낀 군부가 핵개발을 추진한 것인가? 핵을 개발하면, 북한의 현정권은 권력의 절대화에 성공한다. 북한 내부에서 핵을 가진 군사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이미 소진되었다.

현 정권과 일부언론이 앞다퉈 북한 군부개입설을 유포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선 무엇보다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쏟아 부은 국민의 혈세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정일이 제거될 경우, 북한 군부의 강경파가 권력을 잡아 햇볕정책이 무산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유포하는 것이다.

게다가 현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정일의 책임설을 막아야 한다. 김정일은 DJ와 함께 6.15 공동선언의 공동주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김정일이 서해안 교전을 일으키고 철도운행의 약속을 번복하는 인물이라면, 햇볕정책은 실패로 판명난 셈이다. 햇볕정책의 실패는 현 정권 대북정책의 파산선고와 같다. 대북정책의 실패는 현 정권에게 정치적인 사형선고일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며, 북한 군부가 김정일에 저항한다는 소설을 쓰기에 이른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군부 개입설을 급조해 김정일의 “순수한 의도”를 대변할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김정일 정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가 현재 북한의 공식적인 지도자이다. 군부가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든, 김정일이 술김에 내린 판단이든, 북쪽의 불이행 선언은 북한정부의 명의로 발표된 것이며, 김정일의 책임이다. 계약을 어긴 김정일 정권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북한 전문가를 자처하려면 검은 정치의 내막에 대한 억측을 만들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폭정과 벼랑끝 전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비판해야 한다. 어차피 현시점에서 북한 정부의 내막을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태를 군부 강경파의 책임이라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결국 김정일의 주술에 걸려든 것이거나 현 정권의 정치놀음에 복무하고 있다.

한국정치가 김정일의 심기에 좌우당한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스탈린식 전체주의로 전 인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300만을 아사시키면서 핵개발에 몰두한 정권이다. 그런 극단의 전제정을 연출한 것은 오로지 김정일이다. 그런 김정일이 군부 강경파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누가 뭐래도 북한 군부 강경파의 우두머리는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