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좌파 모랄레스 당선과 그 배경

2005년 12월 19일 볼리비아 대통령선거

아이마라족 인디오 출신으로 코카 재배업자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당(MAS)총재가 대통령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 중 6개에서 과반수 득표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고 실제로 개표 중반까지 50% 이상의 득표율을 보이자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2위는 전직 대통령이자 온건우파 노선을 걷는 호르헤 키로가 후보이며 대략 33% 정도의 득표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3위는 일본계 기업가 사무엘 메디나 후보로서 10%가 안되는 득표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방금 볼리비아 일간지 ‘라 라존’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종집계결과 에보 모랄레스 후보가 51.1%로 과반수 득표에 성공했군요. 볼리비아는 대선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으면 1, 2위 후보를 놓고 국회에서 경합을 벌입니다. 그러나 대선과 동시에 실시된 총선에서도 사회주의운동당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모랄레스의 당선은 뚜렷해졌습니다.

사실 모랄레스의 당선은 선거전부터 예측되어 왔습니다. 모랄레스는 키로가 후보에 대해 4~5%의 우위를 유지했지요. 마지막 여론조사에선 모랄레스 35%, 키로가 29%였습니다. 그것이 본선에서는 20% 정도의 큰 격차로 벌어졌네요. 3위인 우파 사무엘 메디나 후보는 패배가 기정사실화되자 모랄레스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선거기간 중에는 모랄레스가 근소한 표차로 집권하면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볼리비아는 재차 정치적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란 지적이 많았지만 이런 압도적 승리에서는 전계층의 국민이 모랄레스를 인정하게끔되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모랄레스는 온건좌파가 아닌 좌파로서 원주민과 코카 재배농 이익을 강력하게 관철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코카는 코카인의 원료로서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에 유입되는 코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코카 재배 중단을 강력히 요구해야겠고 실제로 그래왔죠.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가 굶어죽은 코카 재배농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볼리비아는 코카 재배가 주산업의 하나고 코카를 재배하는 농부들(코카렐로)이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합니다. 원주민 인디오인 케추아족, 아이마라족 뿐만 아니라 혼혈 메스티소(인구의 30%), 심지어 백인들(15%)중에도 코카렐로가 많고 수요는 더욱 높습니다. 한 마디로 코카 재배는 한국의 쌀개방 이상으로 볼리비아인들에겐 사활적인 문제죠.

왜 그런가하면, 볼리비아의 코카는 인구 55%의 원주민들 사이에선 주요작물일 뿐만 아니라 非코카렐로들에게도 치료용 약물, 제사의 주재료로 활용됩니다. 백인 중산층들마저도 코카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마약범죄 때문에 매년 수천명이 사망하는 미국 입장에선 당연히 코카인 유입을 막아야겠고 그래서 1980년대부터 중남미 국가들에게 코카 재배를 금지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넣었을 뿐더러 파라과이에는 군대까지 주둔시켰습니다. 그런데 코카 재배농들이 코카를 재배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까요? 안그래도 빈곤층이 64%인 볼리비아에 어디 다른 업종으로 전환이 쉽겠습니까? 꽤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습니다.

90년대에 코카 재배지역이 차파레 지방에서 정부군과 농민들 간의 유혈충돌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났는데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이 모랄레스입니다. 에보 모랄레스는 95년 MAS를 창당하고 97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죠. 2002년엔 2%의 득표차로 산체스 데 로사다 후보에게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로사다 대통령이 빈곤문제해결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코카렐로 탄압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천연가스산업의 외자도입 문제에서도 볼리비아 시민들의 민심을 잃었습니다. 코카렐로 뿐만 아니라 백인 시민들도 불만을 표출해 거리로 뛰쳐나왔고 내전 위기로까지 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봄에 대통령직을 사퇴했고 그 직을 승계한 대법원장은 여론이 모랄레스에게 기울었음을 인식하고 조기 대선을 선언했죠.

모랄레스가 좌파입니다만 그도 코카를 마약으로 전용하는 것에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국제 이미지 하락 뿐만 아니라 코카의 마약화 때문에 골골대는 볼리비아인도 상당히 많으니까요. 그리고 또다른 원주민 지도자인 펠리페 키스페가 아예 정부를 상대로 내전을 벌이자고 선동할때 그를 설득해 간신히 막는데 성공해, 안정을 원하는 중산층으로부터도 점수를 땄습니다. 같은 좌파지만 라이벌 관계에 있는 마벨 마니니도 모랄레스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그에게 대표권을 맡기기로 했죠. 나름대로 상당한 정치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현재 볼리비아 코카렐로들은 “코카의 마약화는 우리들 자신에게도 피해가 간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막겠다. 대신 코카를 정상적인 산업으로 육성하면 코카 쿠키, 코카 치약 등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모랄레스는 그런 논리를 펼치며 대통령 당선시에는 “모든 농가에게 4에이커의 면적 내에서 코카 재배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죠. 어쨌든 자유선거인데다 여당 프리미엄도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승리한 ‘민주적 대통령’인지라 에보 모랄레스를 정치적으로 비난할 구실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