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측 인사의 악의성(미필적 고의)에 대한 입증자료2

첨부부자료 12. 민족문제연구소측 인사의 악의성(미필적 고의)에 대한 입증자료 2: 모친의 암수술과 사망원인에 대한 입장  1. 암수술본인의 모친은 당시 67세의 나이셨으며, 2005년 10월말 무렵 자궁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며 여타의 암에 비해 비교적 부위가 부위여서 잘 회복치료를 받으면 5년 정도이상은 사실 수 있으리라 누이들과 얘기하고, 어머님에게도 수술만 잘 되시면 건강해지실 수 있다는 위로를 드리며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후 의사측의 입장은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견을 전달받았고, 본인은 어머님의 회복치료등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국회 중순경엔가 국회에서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통과되어 2004년 여름부터 준비해왔던 법제정이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앞에 서술한 자료와 마찬가지로 이미 법제정을 앞두고 본인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측의 압박이 눈에 띄게 증가하여, 법 통과될 법 통과 사실에 대해 기쁘다는 생각도 못들 정도로 열흘 이상 지독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2. 연구소에서의 해직과 암자생활 그리고 어머님의 입원소식과 사망에 이르게 되신 경위법제정 이후 2006년 1월초 청와대 면담 직후 민족문제연구소측은 계획했던 대로 투서등의 각종 음모를 관철하여 TFT라인교체작업등이 원만한 단계로 접어들 것을 예상하고 본인에 대해 해고 조치를 취했다.이후 청와대측과의 면담 이후 상황이 복잡하여 설 연휴무렵까지 쉬다가 그 무렵 라인교체소식과 더불어 투서제출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그후 설 연휴를 지나고 나서 일들이 이상하게 흐르는 것(법제정의 핵심이었던 본인을 배제하고 연구소측에 라인을 연결한 점과 연구소측이 2월 초 접촉에서 ‘잘 하자!’고 해 놓고도 다시 일들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등 어이없는 행태)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시 암자생활을 보름 정도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3월에는 개강하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아 보내고 4월 무렵에 다시 생각을 정리할 게 있어서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와중에 어머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정확한 입원 시점은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 연락이 온 시점은 입원하셔서 상태가 좋지 않기에 연락이 들어온 것이기에 아마도 입원 시점은 3월 무렵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그러나 당시 여러가지로 개인적 상황도 마땅치 않고 찾아뵐 면목이 없던 와중이라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는데, 6월중에 상태가 다시 악화되어 재입원하시게 되었다. 당시 원인은 회복치료 와중에 장폐쇅으로 듣기는 했으나 본인은 이에 대해 회복치료를 하셔야 하는 분이 본인의 상황에 대해 매우 심하게 염려하시다 잘못되신 것으로 판단하며, 이일로 인해 6월 이후에는 전혀 아무것도 못 드시다가 9월에 사망에 이르시게 되었다. 위 상황에 대해 본인은 건강하던 본인 또한 법제정 전후의 압박과 그 이후 실직과 여러 상황에 화병이 발생하여 이듬해인 2007년 1월에 치루수술을 한 후, 다시 재발하여 연이어 3차례의 수술후 총 10개월 여의 고생 끝에에야  완치된 점에서 어머님이 잘못되신 부분과 본인에 대한 압박은 연관관계가 깊다고 평가한다(진료기록 참조). 어머님 또한 본인이 2006년 8월 위원회 별정직 전문계약직에 취직이 되었다는 얘기에 매우 기뻐하더라는 누이들의 얘기 등을 종합해보면 어머님께서 본인의 상황에 대해 늘 염려하셨던 부분이 회복치료과정에서 잘못되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한다(일지등은 진료기록을 참조하여 조금 수정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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