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독도야 가처분신청 !!!

어떻게 이럴수가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어떻게 독도를 홍보하는 영화 입니까?????

긴 글이라도 꼭 읽어주시고 독도의 현대사를 바로알립시다!!!!!!!!!!!

 


미안하다 독도야 (상영금지신청내용)

 

1.김성도님의독도의생활(40년넘게살았다는내용은사실과다르다)   ☆김성도씨는 독도에서 생활한 것은 사실이나 주민으로써의 생활이아닌 최종덕씨 의 인부로 2달정도 잠깐씩 와서 배에 선원으로 일을해주고 인건비를 받아가는 사람이다.그러므로 독도에서의 삶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김성도씨는 저의 아버지를 마치 자기와같이 독도를 개척한 동업자로 표현을 한다. 김성도씨말데로라면 저의 아버지께서 최초로 주민등록지를 독도로 변경할 때 (1981년 10월14일)에 왜 김성도씨는 주소를 옮기지 못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이 독도에서 어업을 못할 시기에 1991년 9월에 주민등록지를 독도로 옮겼는지?

2 . 김성도씨의 최종덕씨 사후 20년동안 살아왔다.(김장훈대사)

☆1987년 9월23일 최종덕씨 사망전1986년 9월부터 최경숙(딸)부부가 아들과 독도에서 생활하여 최종덕씨 사망후부터 1991년까지 독도에서 아버지의 대 를이어 어업채취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1991년9월이후로 김성도씨가 독도어업채취건을 도동어촌계와 함께 함으로 그때부터 김성도씨가 주관이 되어 독도에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깐 김성도씨의 생활은 최종덕 옹 사망후 (1987년 9월) 부터가 아닌 1991년 9월부터 1996년 까지 독도에서의 생활을 한 것이다. 그이후 10년뒤 2006년 2월 독도이장으로 다시 독도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성도씨가 독도에서의 생활은 과연 몃년산것인가?

3 . 독도에서 만나 결혼했다. (김성도 부인대사)

☆김성도씨 부인 김신열씨는 그당시 울릉도에서 해녀로 있었기 때문에 독도에서

1991년 이전은 독도에서 생활한적이 없는 사람이다.

4 . 김성도 손자 김환이 (독도가 고향이다 )-김장훈 대사-

☆환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할아버지 할머니 말을 배운곳도 이곳 독도다 -김장훈대사-

이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김성도씨가 1996년에 최종던씨가 지은집이 무너지자 복구를 할생각은않고 독도에서의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정부에서 서도에 집을 새로 짓고 난뒤(10년후) 2006년 2월 독도이장으로 취임 후 독도에서 생활을 한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김성도씨 손자가 지금 10살이다. 그렇다면 어떻해 그손자가 독도에서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웠겠는가?

5 . 독도에서 생명이 태어난 일이 없어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삽살개가 독도에서 새끼를 낳는다는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기증을 하게되었다. -홍지홍 교수 대사-

☆ 그렇다면 독도가 고향인 조한별은 과연 무엇인가 ?

이모든 것을 종합해본 결과 김성도씨가 과연 누구인가?

 

#, 우리 유족들은 김성도씨에 대한 원망으로 이러는 것 절때로 아니다 ,다만 고인에 대하여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바로잡고자 이러는 것이다,

 

 

※미안하다 독도야 제작진은 이영화를 제작하

 

기전 최경숙에게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얻기위

 

해 용인으로 찾아왔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사진

 

과 산소에 찾아가서 촬영을 하고싶다고 말을 하

 

였다. 그리고 김성도씨가 아버지 산소에서 참배

 

를 하는 모습을 찍고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최

 

경숙은 그것만은 (김성도씨가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는 것.) 안된다고 강력히 부인을 했다. 그

 

것은 나뿐만 아닌 우리 유족자 모두의 뜻이였

 

다. 제작진들은 최경숙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곳

 

에서의 촬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지만 끝

 

내 그곳에서 촬영을 했고 최경숙에게 사전 예고

 

도 없이 촬영을해 그대로 상영할것으로 보인다.

 

최경숙은 제작진들을 만나 아버지산소에서 찍

 

은 영상물을 영화상영에서 삭제를 하여달라고

 

강력히 말하였다,그것은 저의 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김성도씨가 하여온 행동과 말)에독도

 

에 대한 삶을 모욕하는 행위 이고 가증스런 행

 

동임을 우리유족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래

 

서 강한 부정과 산소 장면삭제를 요구함에도 불

 

구하고 제작자(최현묵)자는 그대로 영화에삽입

 

하여 국회에 시사회에서 방영을 하였습니다.그

 

리고 최경숙은 제작자에게 상영금지를 하여줄

 

것을 내용증명을 보내었으나,그것조차 받지를

 

않고 돌려 보내었습니다.그래서 2008년12월24

 

일에 수원지방법원에 영화상영가처분신청을 하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