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당파만 있을뿐 나라는 없다는데, 한국은

얼마 전 올 11월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던 미국 민주당 에반 바이 상원의원이 21일 뉴욕타임스에 ‘상원을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긴 글을 기고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재선(再選)의 바이 의원은 이변이 없는 한 11월 선거에서 6년 임기 상원의원에 세 번째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던 여당 중진이다.바이 의원은 “(재정과 무역) 적자 해소, 경제 살리기, 에너지정책, 건강보험 개혁 등 나라 장래가 걸린 절박한 과제들이 쌓여 있는데도 의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정지 상태”라고 했다. 그는 미국 의회가 할 일을 못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완고한 당파주의와 타협을 모르는 경직된 생각”을 꼽았다. “타협을 무조건 배신이나 도덕적 굴복으로 여기며, 나라를 위해 단기적 정치 이익을 희생시킬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2년 상원의원 생활 동안 미국 의회가 소속 당파를 잊고 미국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서 뭉쳤던 경험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단 한 번뿐이었다며 “그때는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없었다. 미국인만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바이 의원의 탄식을 자아낸 미국 정치도 오로지 계파(系派)만 신주(神主) 모시듯 하고 소속 정당마저 뒤로 제쳐버리는 ‘계파 지상주의(至上主義)’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에 비하면 양반이다. 한나라당 주류와 친박(親朴) 세력은 지난 2년간 자기네 정당 자체를 잊어버리고 일편단심 계파 정치에만 매달려왔다. 자기 당을 스스로 떠났든 아니면 강제로 밀려나갔든 당(黨) 이름에 자기네 계파 보스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은 세계 정치에서 한국이 유일한 사례다. 정치 못난이들을 수록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우행(愚行)이다. 국회의원 노릇을 그렇게 하면서 국민의 얼굴도 얼굴이려니와 자식들 얼굴은 어떻게 제대로 쳐다보는지 모를 일이다.바이 의원은 미국 의회가 정당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을 가리켜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미국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정당 안에서도 계파의 울타리 안에서 ‘오야붕’ ‘꼬붕’ 하는 전근대적 위계(位階) 질서에 목을 매달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 특히 한나라당 계파들은 정당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主犯)이고, 나라를 벼랑으로 몰고 있는 ‘권력 도박단’이고, 민주주의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