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6,25전쟁시 30-50발 원자탄 중공에 사용할 계획

<기획탐구> 한반도 핵무기, 그 파괴적 유혹 에서 발췌

기사입력 2006-10-16 11:24 |최종수정2006-10-16 11:24  맥아더의 핵무기 투하 추진 = “원자폭탄 사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대대적으로 반격에 나선 가운데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1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도쿄 맥아더사령부의 정보처 특수계획과장이던 필립 코르소는 당시 한국에는 40개의 원자탄이 배치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트루먼의 원폭 사용 선언에 깜짝 놀란 사람 중 하나는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 그는 급히 미국으로 날아가 12월 4일부터 8일까지 여섯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듭하며 트루먼을 말렸다. 당시 애틀리는 한국에서 원폭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트루먼은 구두로만 그러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후 원자폭탄 사용계획은 폐기되지 않았다. 특히 맥아더 사령관은 투하 원폭을 26개로 정해놓은 가운데 1950년 12월 30일 중국 본토 투하를 워싱턴의 합참에 요청했다. 당시 맥아더의 구상은 중국 공격을 통한 확전이었다. 맥아더의 원폭 요청은 끈질지게 이어졌다. 1951년 1월 10일, 그는 다시 합참에 “현 여건에서는 남한에서 전선을 유지하기 힘들다. 유엔군 철수가 불가피하다. 한반에서 철수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한반도를 지킬 것인지 결정내려야 한다”는 내용의 긴급전문을 보내며 원폭 투하를 재촉했다. 하지만 트루먼은 그로부터 사흘 뒤 맥아더에게 친서를 보내 전쟁은 한반도 내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못박아 명령한다. 늘 삐걱거렸던 트루먼과 맥아더의 관계는 4월 11일 트루먼이 맥아더를 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함으로써 청산된다. 정일권의 증언에 따르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미국만이 갖고 있는 원자탄을 왜 사용하지 않으려는가. 악독한 일본군벌도 원자탄 두 발로 깨끗이 끝장나지 않았던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승만뿐 아니라 한국의 반공주의자들은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지 않은 걸 안타깝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맥아더의 후임이었던 매튜 리지웨이 중장은 “맥아더의 문제점은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공산세력을 궤멸시키고 아시아에서 소련과의 냉전대결을 완전히 종식시켜야 한다고 믿었던 데 있었다”고 훗날 회고를 통해 밝혔다. 맥아더의 원폭투하 예정지는 애초에 알려졌던 26곳보다 더 많았다. 그는 회고록에서 30-50발의 원자탄을 사용할 계획이었다고 털어놨다. 다시 말해 26발은 1차분 투하량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군사적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원자탄 사용을 하기로 결정하고 1951년 10월에 ‘허드슨 하버’라는 암호명 아래 몇 차례 투하 연습까지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