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에 대한 3가지 오해 (펌)

▲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은 거의 명나라 시대에 축조된 것이다.

첫 번째 오해는 이 모든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모두 진시황이 축조했을 것이라는 점 이다.

물론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축조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만리장성을 처음 만든 사람은 진시황제가 아니다.

굳이 만리장성의 기원을 따진다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가 아닌 그 전의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만리장성이라는 말이 문헌에 나타난 것은 전국시대이다.

결국 엄밀히 말하면 진시황은 전국시대 연(燕)·조(趙)·진(秦) 등의 여러 나라가 외적(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미 구축했던 장성들을

통일 이후 연결하고 더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

[퍼온이 보충]

북경대 출판 중국 고대사 교학참고지도집상의 “진장성 (진시황의 장성)”

진시황의 장성은 만리장성의 서쪽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때 완성됐다.

————————————————————————————-

두 번째 오해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의 존재가 진시황 때 축조한 장성의 모습 그대로 일 것이라는 점 이다.

유감스럽게도 진나라 때 축조된 고대 장성은 세월이 흐르고 여러 왕조의 명멸을 거치는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개 ·보수 및 방치 등을 거쳐 거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만리장성은 거의 명나라 시대에 축조된 것 이다.

명의 영락제 시대 이후부터 진행된 만리장성의 개축은 무려 18차례의 개수를 거쳐

16세기 말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압록강 인접)으로부터 서쪽의 감숙성 가욕관까지 연결된 실제거리 1만2000여리나 되는 오늘날의 만리장성이 완성되었다.

▲ 마차가 달릴 수 있을 만큼 넓게 조성되었다는 길이

정작 마차는 고사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걷기 힘들 만큼

수 많은 인파에 떠밀리면서 걸어야 할 정도로 지금 만리장성은 만원이다.

특히 만리장성은 강력한 국가의 상징일 것이라는 일반인의 세 번째 오해 와는 달리

실제 역사상 비교적 세력이 약한 한족 왕조 때 더 활발하게 축조 되었다.

만리장성의 축조 목적이 북방의 이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므로

실제 한족국가이면서도 문물이 융성했던 당대나 몽고족이 통치한 원대, 만주족이 통치한 청대에는 만리장성에 대한 개보수나 증축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보며

문득 악순환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정정이 불안하고 늘 북방 이민족이라는 위협요소를 가지고 있는 국가가

이 위협요소를 막기 위해 인력과 자금을 투자하여 만리장성이라는 대역사를 하다보니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정정이 불안해지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이처럼 만리장성의 보수는 역대 왕조의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안하자니 북방 이민족 침입이 걱정되고

하자니 비바람에 허물어진 장성을 보수하기 위해 매번 수십만이 동원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만리장성을 쌓던 수많은 사람이 일을 하다 사고로 죽게 되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악명이 높았던 천덕꾸러기 만리장성도

오늘에 와서는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라는 감투도 쓰고 비싼 입장료를 받고 짭짤하게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 효자 상품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으니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날 정도이다.

황토를 틀에 넣어 햇빛에 건조시켜 만들었다는 수많은 흙벽돌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만지며 걸으니

손끝을 따라 벽돌 하나에 숨어있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땀과 한숨이 전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제는 중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만리장성과 진시황의 악연,

진시황의 입장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으로 기존의 장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축조했을 뿐인데

두고두고 백성들의 피와 땀을 강탈해간 폭군으로 회자되는 점은 안된 일이나

그의 악명으로 후세가 두고두고 먹고 살게 되었으니 그 또한 후배들에게 전해준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