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는 이유는 민족민주운동을 한 것뿐이다- 이수병

숨겨진 진실, 피맺힌 죽음

사형집행 기록 최초공개- 당시 입회목사가 들려주는 생생한 증언

취재진은 당시 사형집행 기록을 입수, 최초로 공개한다.
사형집행 명령부에는 당시 집행자와 입회자의 이름과 사형집행에 걸린 시간,
이수병의 최후 진술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취재진은 사형집행부의 기록을 추적하여
당시 입회목사인 박정일 목사를 어렵게 만났다.
그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사형집행 당시의 상황을 들어본다.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바로 이날 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20여 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혁신운동의 분출을 염원하며- 혁신운동의 새로운 씨앗, 암장
이수병은 고교시절부터 김종대, 김정위, 김금수, 이영호, 최종국, 박중기 등과 함께 ‘암장’이란 서클을 조직하여 반독재 운동에 앞장섰다. 자신이 직접 지은 암장이란 이름은 땅속에 녹아있는 마그마란 뜻으로 화산처럼 혁신운동의 분출을 염원하는 뜻이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한 이수병은 당시 민족적이고 진보적인 단체들과 접촉하게 된다. 이어 서울로 상경하여 암장의 서울시대를 열었다.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성격을 지닌 4.19를 기점으로 공개활동을 시작한 암장은, 4.19를 민족통일운동으로 전환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수병은 학원민주화운동, 7.29 총선시 혁신계 후보지원, 계몽 강연회 등 다각적인 활동과 접촉을 벌여나갔다. 또한, 학생운동세력이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 학내에서 진보적 의식을 가진 학생들과 민족통일연구회를 발족시켜 수차례의 세미나와 대강연회를 개최, 통일문제에 관한 인식을 넓혀간다.

혁신계의 잔혹사
1956년 5월, 평화통일을 주장한 혁신계 인사 조봉암이 대통령 선거에 나와 216만 표를 획득한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혁신계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권은 조봉암을 처형으로 응수한다. 조봉암 처형은 혁신 정치세력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 후, 민족일보 입사를 토대로 이수병은 학생신분을 벗어나 활동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5.16 쿠데타는 일거에 통일운동을 잠재웠다. 민통전학련, 민자통, 통합예정이던 민민청, 통민청 해체, 민족일보 종간이 이어졌다. 북한의 활동을 고무·동조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사장 조용수 외 12명이 기소된 민족일보 사건은 결국 사장 조용수를 사형시킨다. 이로 인하여 4.19 이후 떠오르던 혁신계의 통일운동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철퇴를 맞는다.
당시 피검된 이수병은 학생으로서는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구형 받고 7년 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다른 민통련 관련자들이 형집행면제로 풀려난 반면, 이수병은 특A급으로 분류되어 중형을 받게된 것이다.

정권연장을 위해 필요했던 희생양- 그들은 독재의 재물이었다.
석방 후 이수병은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변혁운동에 뜻을 둔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한 접촉을 재개한다. 독서회, 강좌를 통하여 혁신계를 비롯 학생, 노동자, 민주세력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활동을 전개해가던 이수병은 1974년 민청학련 상층부로 지목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연행된다. 인혁당 사건은 군사정권 아래의 사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문 조작사건이다. 이수병을 비롯하여 총 23명이 구속된 이 사건 관련자들은 내란예비 음모 및 내란 선동이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주요 관계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판결이 난 바로 다음날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 공안관련사범이라고해도 사형선고 이후 적어도 3,4년은 집행을 미루는 관행에 비춰 극히 이례적인 이 날의 사형집행은 조작의 전모가 밝혀지길 두려워한 박정희와 중정에 의한 폭거였고, 우리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비극이 되고 말았다.
이수병을 비롯한 그들은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평화통일 등을 주장하며 꾸준히 혁신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격동의 시대, 극한적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혁신운동의 명맥을 유지해온 이수병. 인물 현대사에서는 사법살인 30년을 맞이하며, 이수병의 행로를 통해 광복 이후부터 7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혁신계 세력의 이상과 노선, 그리고 그들의 한계와 좌절을 조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