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억압, 그리고 인권유린의 현장

우리는 1980년대 말 이후 북한의 상황과 관련해 ‘위기’라는 말을 써 왔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외교적 고립과 지속적으로 악화돼 온 경제난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위기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경제의 붕괴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기능 장애와 무기력 상태에 빠뜨렸다. 1인 지배하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강압적 통제에 기초해 있던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채 일종의 사회적 공동화 현상에 직면했다. 근대적 정치문화가 보편화되지 못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지 못한 북한 사회에서 주민들은 일상화된 경제 파탄에 순응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고난의 행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할 만큼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 상황도 악화되고 있고, 끊이지 않는 탈북 행렬 역시 오늘날 북한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군사국가의 제도화와 강성대국 건설을 위기관리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대내적으로 정권 안정을 위한 체제 단속을 위해 전체 사회에 일사불란한 명령체계를 주입시키고 나아가 대중적 저항의식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봉쇄하려는 것이며, 대외적으로 일반자원의 고갈 속에서 유일한 영향력으로 남아 있는 ‘군’을 협상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의 이러한 전략은 체제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봉합해 미래로 미뤄 버리는 결과만을 낳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붕괴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지난 1월 22일 미국 해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동으로 발표한 ‘2010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자유는 ‘100점 만점에 1점’으로 세계 179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1995년부터 조사가 시작된 이후 16년 연속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화폐개혁 조치도 오히려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과 주민들의 식량부족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인권 상황도 심각하다. 북한이 지난해에 헌법개정을 통해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한다”는 조문을 넣었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끔찍하다고 국제인권감시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지난 1월 20일 평가했다. 이 단체는 “북한에는 야당과 자유언론, 종교자유가 없으며 임의 체포와 구금, 재소자 학대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국가란 무엇이며, 한 사회의 삶의 양식을 규정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정치범수용소로 상징되는 인권 유린의 일상화, 자유에 대한 억압과 굶주림, 그리고 끊임없는 탈북 행렬로 주민들을 ‘사실상’ 내몰고 있다면 과연 그러한 국가 또는 정권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북한이 경제 파탄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 작동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 당장 6자회담에 복귀해 핵개발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경제제재를 풀도록 하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동시에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남북 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남북 교류협력 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켜 나가면 된다. 지금처럼 한편으로는 대화를 하자면서 서해 NLL선상에 일방적으로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하고 포사격을 감행하는 등 계속해서 군사도발을 일삼는다면 북한에겐 희망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1.29)와 미국 CNN(1.30) 등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을 북한은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한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의 진의를 북한 당국이 귀담아 들을 때 남북 간에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얽혀 있는 문제들이 술술 풀리고 거기에 북한의 살 길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