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뒷전, 대응은 뒷북… ‘구조적 결함’이 굴욕 불러

성장 우선·과잉 설비·사원 관료화가 화근ㆍ경영진의 ‘세계 1위 자만심’이 위기 키워 지난해 2월6일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2008년도 연결결산에서 순이익 예상치를 당초 500억엔 흑자에서 3500억엔 적자로 햐향 조정했다.  한해 전인 2008년 2월5일 전년도 결산에서 매출 19조7221억엔, 순이익 1조4010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힌 지 1년 만의 급전직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이날 도요타 신용등급을 종전 최상위인 ‘Aaa’에서 한 단계 밑인 ‘Aa1’으로 조정했다. 도요타가 최상위 등급에서 밀려난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외신들은 ‘도요타의 굴욕’이라고 표현했다.세계 1위의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가 비틀거리고 있다. 엔고의 영향, 2008년 가을 이후 불어닥친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은 탓도 있지만 회사가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차량 결함에 따른 잇단 리콜 조치는 이런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 위기에 무너진 ‘몸집 불리기’ = 일본 시장의 3배 이상인 연간 1600만~1700만대가 팔리는 북미 지역 자동차업계 상황은 2008년 후반부터 급랭하기 시작했다.  1000만대 판매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왔다. 국내외 판매가 감소하자 도요타는 지난해 2~3월 일본 내 12개 전 공장에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11일간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도요타의 지난해 1~3월 하루 평균 생산대수는 1만2000대. 90년대 버블붕괴 후보다 낮은 수준이다. 4월 이후엔 더 악화돼 하루 생산대수가 8000대까지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 추세라면 2009년 일본 생산은 전년의 절반인 200만대 수준으로 떨어진다. 연간 최소 300만대는 생산해야 정사원의 고용유지가 가능하다.  감원과 조업단축만으로는 난국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도요타로서는 공장 6~7개분에 해당하는 200만대 이상의 과잉설비를 이미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장과 팽창을 우선하면서 비대해진 회사 규모로 인해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고객 제일주의 ‘도요타 가치’ 실종 = 외부의 환경 변화에 걸맞지 않은 도요타 경영 스타일이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도요타는 세계 1위를 목표로 성장 제일주의를 추구하면서 이익과 주가를 우선했다. 그 결과 ‘현장 중시’와 ‘모노즈쿠리 정신(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잃어버렸다.  전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할버스탬은 저서 <패자(覇者)의 교만>에서 “도요타는 싸고 좋은 품질의 대중차를 착실히 노력해 만든 것이 장점인데 언젠가부터 이익 우선주의에 빠져 대형차와 고급차 중심의 회사가 됐다”고 꼬집었다.  “기관투자가와 정치가, 언론에 대한 대응을 우선한 결과 최고의 팬인 고객을 잃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번 리콜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위기 상황에 뒤늦게 대응한 것도 화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진 직후에도 도요타 임원들의 입에서는 “그것만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판매가 늘어날 것이다”라는 안이한 전망만 나왔다. 상품과 브랜드가 갖는 파워, 탄탄한 판매망과 시장조사력 등을 과신한 때문이다. ◇ 사원의 관료화, “현장은 몰라요” = ‘현장’을 중시하던 사원들의 변질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예전 도요타의 엔지니어는 “하루 손을 3번 씻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하루에 3번은 현장에 나가 자신이 설계한 도면대로 제조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말은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최근 10년 동안 도요타에는 일류 대학을 나오고 외국어와 프레젠테이션에 능통한 우수한 인재들이 입사하지만 현장을 모른다.  “도요타에는 펀드매니저 같은 사원들만 입사하느냐”는 자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도요타의 한 임원은 일본 언론에 “예전 현장 견습을 위해 한 신입사원을 본사가 있는 도요다시에 배치했더니 ‘도쿄가 아니면 근무하지 않겠다’며 사표를 던지고 나간 일도 있다”고 말했다.